강기봉 목사 (뉴욕백민교회)
규모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대형교단인 PCUSA가 동성결혼을 총회 80%의 찬성으로 통과시켰습니다. 미 연방대법원도 최종 심의에 착수했는데, 대법관 9명 중 4명은 찬성, 4명은 반대편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사람사람이 자기 소리를 내는데 걸림이 없고, 인터넷이 여과 없이 모든 말들을 쏟아내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우선 보이고,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압도되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결혼은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원리를 너무 쉽게 무너뜨립니다. 동성결혼 뿐 아니라 현대 세계의 많은 분야에 혼돈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우리의 문제 해결 접근은 말씀으로 또 한 번 돌아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있으매,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 복되기를 원하시기에, 우리에게 주신 율법이 어렵거나 힘들거나 듣기에 너무 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그리고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읽고 듣고 따라 행할 수 있도록 개방해두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씀이 너무 높은 곳에 있고 말씀이 너무 깊은 곳, 너무 먼 곳에 있어 미치지 못하겠다고, 그래서 따라 살기가 힘들다고 투정과 핑계하기를 잘합니다.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갈수록 믿음으로 살기가 어려워진다, 힘들다’는 말들을 합니다. 진실된 성도들의 고백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고비에서 은근히 하나님이나 그 말씀에 탓을 돌리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에게 도사리고 있는 원인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어두워지고 무디어진 것은 아닌가, 내 마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인생의 원리를 재차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타조와 개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타조가 보니 개미들이 쉬지 않고 걷는데 한 시간을 걸어도 자기 한 걸음 거리도 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조는 시속 70Km 씩을 달리는 데 비하면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개미들을 내려다보며 ‘얘, 개미들아 너희들 그렇게 걷는 것을 보니 참 안 되었구나’ 하며 동정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개미들이 항의하듯이 ‘그래도 우리는 저 넓은 바다를 건너고 저 높은 하늘을 날아 미국에도 갈 수 있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조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어떻게?’ 하고 물으니, ‘배를 타는 사람, 비행기를 타는 사람 짐 가방에 들어가면 간단하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힘으로는 말씀 따라 살기 쉽지 않지만, 주님 은혜를 의지하면 쉽습니다. 히 11:6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11-14),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시 같은 말씀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말씀의 평이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대를 초월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고,누구나 따라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궁창도 하나님과 교통하고, 밤은 밤에게, 낮은 낮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전합니다.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자연세계도 알아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요일5:3은 ‘하나님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자녀를 낳으면 두세 살부터 십계명을 외우게 하고, 다섯 살을 넘으면 모세오경을 읽고 그 뜻을 마음 판에 새기도록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학식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각기 있는 그 모습에서 통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제 두 살 반을 넘기고 있는 손자가 있습니다. 아이가 길가의 꽃을 보면 꺾으려 안달을 부립니다. 한 번은 정색을 하고 ‘이 꽃은 하나님이 여러 사람과 함께 보라고 지으셨는데 네가 꺾으면 되겠어?’ 했습니다. 이 말에 아이가 내민 손을 거두었습니다.
말씀은 모든 사람의 영혼을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시19:7-8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이 시는 다윗이 쓴 것입니다. 다윗은 소년 시절부터 양떼를 치면서, 밤에 사자나 곰과 같은 야생 짐승이 양떼를 공격해 오면 ,두려워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습니다. 짐승의 수염을 잡고 쳐 죽였습니다. 그 때 다윗을 그토록 용맹스럽게 했던 힘이 바로 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육축을 어찌 야생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할 수 있느냐는 확신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이렇게 밤에 양 무리를 지켜야만 하는 이름 없는 목동에게도 힘과 지혜를 주도록 쉬웠습니다. 말씀은 순전함으로 듣고 따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믿는 연인 사이의 말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 중부에 45년 된 교회 교인들 평균 연령이 65세였습니다. 거의 모든 교인들이 믿음 생활이 어렵다, 하나님 말씀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말을 하며, 교회 분위기가 침체되고 굳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목사님이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교인들의 반발과 불평이 많았지만 밀고 나갔습니다. 처음 몇 주간은 그저 시끄럽고 어수선하기만 한 것 같았는데, 한 달이 못되어 어른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과 단순함에 감동을 받으며 말씀이 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누가 특별히 유도하지도 않았는데, 생활 목표를 ‘순결하게, 단순하게!’로 설정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기를 힘쓰더니, 교회가 생기로 충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린 아이 같은 순전함으로 받을 때 결코 어렵지 않고, 누구든 그 말씀 따라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15-20). 하나님의 말씀은 오를 수 없는 하늘 끝에 있는 것도 아니요, 건널 수 없는 바다밖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기로, 또 따르지도 않기로 작심했다는 표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의 입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말씀을 들을 수 있고,또 따라 살 수 있어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모압 평지 설교, 곧 모세의 일생을 매듭짓는 결론 부분입니다. 이 결론에서 모세는, 다시 한 번 말씀에의 순종을 촉구합니다. 물론 말씀에의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선택권은 듣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에 따른 형벌과 저주가 분명히 있을 것을 확실히 합니다. 요 14:6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중간 길도 없고 제3의 방법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구원에 이르는 길만을 준행해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해, 자기 생각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요, 인생을 최고로 의미있고 복되게 사는 길임을 배웠습니다. 미디안 광야 떨기나무 앞에서 자기에게 애굽 바로 앞에 나갈 것을 명하시는 하나님께, ‘저는 자격자가 아니니 다른 이를 보내시라’며 거부했던 모세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기로 한 것이, 모세 자신을 위대한 구속역사의 대들보로 쓰임 받게 한 것입니다. 이후로 모세는 공포의 대상이요 상대하고 싶지 않은 무법자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그대로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듣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먼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어 순종하는 것이 쉽고, 그 길이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역설하는 것은 사실 모세의 인생 고백인 것입니다. 불평에 불신을 밥먹듯 하는 백성을 인도하면서도, 온유함이 지면에 승하고, 충성됨이 마치 주인에게 충성함과 같이 되었습니다.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꿀과 같이 달고(시119:103), 하는 일은 마치 예수님이 지신 멍에처럼 가볍습니다(마11:30).
3.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1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광야를 40년간 행군하게 하신 목적을 8:3에서 밝혀주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떡은 아주 실질적인 문제입니다. ‘사흘 굶어 이웃집 담 넘지 않는 양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간 삶에 물질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거의 본능적으로 사람은 세상과 그 물질에 의해 좌우되기를 잘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세상과 물질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아야함을 반복해서 연단시키신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 지켜 살아야 된다는 훈련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이유는 말씀대로 1주일 6일 동안은 해뜨기 전에 들로 나가야 만나를 거두어 올 수 있었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려면 말씀 따라야 했고, 또 이웃 모두도 같이 움직였습니다. 해질 무렵 메추라기 거두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먹고 살려면, 길 잃지 않으려면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환경이 크게 바뀝니다. 먹고 사는 물질문제도 광야에서와는 달리 많은 기회와 선택이 있습니다. 자기 땅도 있고 과수원도 있고 가축도 있고 집도 있습니다. 할 일도 다양해지고 시간 사용과 물질 사용에 무한한 기회, 곧 자유가 주어집니다. 자신들을 지도하고 감독하던 모세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이런 극적인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최우선적으로 따라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이제 각 사람의 마음에 심어, 양심을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강제가 아니요, 의무가 아닌, 스스로의 마음을 따라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기회 많은 미국, 좀 더 자유가 있는 미국에 와서, 우리 마음 판에 새겨 주사 주님 말씀의 소리를 듣고 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요즘은 이야기 만드는(story making) 재주들이 범람합니다. 자기 위주로 말하고, 남들도 다 그러는데 내가 이러는 것 뭐 대수냐는 식입니다. 정말 어는 시대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문자대로 믿고 순종해야 될 때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따르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을 명하는 일이 없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시고 복되게 살게 하기 위해 말씀을 주십니다. 부디 말씀이 먼데 있다, 너무 어렵다 하지 마시고, 주신 말씀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 순전함으로 사랑하고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은 쉬워지고, 말씀이 힘이 되실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 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