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3장 1절)

차군규 목사 (순복음부천교회 담임)

본문 히브리서 3장은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근본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땅엣 것으로는 우리가 이미 죽었고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생명 되시고 길 되시고 진리 되시며 믿음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관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만약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모든 것이 헛되며 궁극적인 실패일 따름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가지고 밤새도록 성좌를 바라봄과 같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깊이 생각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의 믿음의 도리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의 도리란 우리의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님, 나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승천하시어 전능하신 하나님 옆에 앉아계신 예수님 그리고 심판주가 되어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이처럼 믿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눈에 보이는 충분한 근거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롬8:24). 보이지 않은 것들을 바라는 것이 희망입니다. 믿기 어려운 것들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까닭에 그 분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전인격적인 고백인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사도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란 말의 원래 뜻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란 의미로써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직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도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의 직분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 대하여는 참된 순종을 보이셨고 사람들에게는 참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사도되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지체된 성도들을 양육하시고 각자에게 알맞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목자되시어서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셔서 삶을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포도나무가 되셔서 가지인 우리로 하여금 열매 맺도록 도우시며 건물의 모퉁이돌이 되셔서 교회의 돌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랑되셔서 영원한 아버지 집에서 누릴 아름다운 삶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대제사장은 둘째 장막에 일년에 한번씩 들어가되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데 이 피는 백성의 죄와 허물을 속하기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되신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자기를 드려 제물이 되어주시고 그의 흘리신 피로 우리를 대속하여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을 향하여는 죄 문제에 대한 화해를 이루었고, 사람들을 향해서는 동정과 사랑을 베풀었으며 사탄의 세력에 대하여는 죽음의 권세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말미암아 몸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히4:15).

넷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1)거룩한 인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생각에는 위대한 힘이 있어서 마음으로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면 상대방이 내게 끌려오고 내가 그에게로 끌려가서 연합되고 동화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생각은 그 사람의 인격 건설의 기초가 되며 또한 인격은 그 사람을 다는 저울이 됩니다. 그래서 잠언 말씀에도 “대저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했습니다.

2)심령이 단순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집중된 생각은 심령을 통일시켜서 단순하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단순한 심령을 소유한 사람들은 번잡스런 세상의 고락에 휩쓸려 요동하지 않습니다. 본래 생각이라는 것은 기차,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천하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3)영력을 갖게 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경외하는 사람들을 영적인 힘으로 충만하게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영력은 최고의 힙입니다. 성도는 생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연결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즉 예수님과 깊이 교제함으로써 말씀의 새 힘, 기도의 새 힘, 지혜의 새 힘, 유혹을 이기는 새 힘, 환난을 이기는 새 힘, 핍박을 이기는 새 힘, 봉사의 새 힘, 전도의 새 힘, 기쁨과 감사의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힘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에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4)죄악이 심중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사탄 마귀는 사람의 생각을 타고 들어와서 죄악의 씨를 뿌리는데, 예수님만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사탄이 들어올 길과 틈이 없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것은 같은 것끼리 모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썩은 생선에 쇠파리가 날아오고 향기로운 꽃에 벌과 나비가 날아오는 것과 같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의 향기를 뿜어내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임재하시어 성령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심령의 천국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자기 안에 천국을 이룬 사람은 세상에 나아가 천국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증거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나타내는 향기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됩니다.

5)재림의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세상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귀에 세상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고 눈에는 세상의 현란함 외에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소리로 친히 강림하시는 것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고 그 길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히3:14)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 않을 때 다시 오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밭을 갈고 있으나 한 사람만 데려감을 당하고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나 한 여자만 데려감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여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세상을 이기고 마음속에 천국을 소유하여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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