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삼 목사 (나성제일교회)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전파하는 종교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말은 우리 성도들도 부활할 것을 믿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일아침 예배 때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신앙고백을 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3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한다.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은 집안 방구석에서 죽으신 것도 아니고, 어떤 사고로 죽으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모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공개 처형을 당해 죽으셨다. 그는 금요일 오전 9시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분명히 운명하셨다. 그리고 빌라도는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서 아리마대 요셉의 요구에 따라 무덤에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의 명성도 땅에 떨어졌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도 땅에 떨어졌다. 모든 것이 그것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사한지 3일 만에 온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그를 따르던 많은 무리들은 주님의 곁을 떠났다. 그의 제자들도 다 도망갔고, 수제자 베드로는 멀리서 쫓아가다가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3일이 지나자 도망갔던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분명히 두 눈으로 만나보았다. 도마는 손으로 만져 보며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기독교가 온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전파 내용이다. 기독교가 왜 다른 종교와 다른가?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는 무덤이 있다. 공자나 석가나 모두 무덤에 들어가서 한줌의 흙이 되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무덤에 갇혔다가 살아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을 박차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은 빈무덤이라는 것이 차이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에도 늘 말씀하시기를 “나는 십자가에 죽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3일 만에 살아날 것이다” 말씀하셨다.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으면 누가 예수 믿고, 왜 예수님을 전파하고 순교까지 할까? 누가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며 죽을까? 거짓은 오래 가지 못한다. 거짓은 힘이 없다. 그러나 사실을 말할 때 힘이 있고, 진리를 말할 때 능력이 있다. 거짓을 말하면서 순교까지 하는 사람은 없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2000년의 역사이다. 역사학자 토마스 아놀드 토인비가 말하기를 “예수님의 부활보다 더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은 없다” 고 했다. 오늘 본문 20절에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했다.
부활의 사건은 역사 이래 가장 처음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이 있고 부활을 못 믿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는 내세를 믿는 사람이 있고, 내세를 안 믿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부활도 있고, 내세도 있다고 말씀한다. 문제는 내세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사는 방법이 다르다. 목적도 다르다. 인생관이 다르다. 역사관이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다. 내세를 안 믿는 사람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했다(고전15:32). 안 믿는 사람은 내세를 안 믿으니, 내세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다. 내일의 소망이 없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말씀과 부활을 통해서 내세를 믿는 종교이다. 역사 이래로 예수님같이 산 사람이 없다. 예수님은 거짓말 하신 적이 없다. 그는 진실하신 그 분이 하신 말씀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 이러한 말씀이 정상적인 사람이 하는 말 같은가? 미치광이의 말 같은가? C. S. 루이스의 말대로 우리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무릎을 꿇든지, 아니면 미치광이라고 소리치고 떠나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 영생의 종교로 증명된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도 믿는다는 말이다. 부활을 안 믿으면 기도교인이 아니다. 부활 사상을 모르면 기독교를 모르는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진리도 신앙도 봉사도 다 소용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고전15:14).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사랑도 봉사도 희생도 귀한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부활을 믿기에 그 나라갈 준비를 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다. 부활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자연현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부활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요, 구원의 역사이다. 이제 우리는 오늘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에 동참해야 나도 부활할 수 있다. 끝으로 부활에는 3가지 부활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마치겠다. ①과거의 부활 : 즉, 예수님의 부활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예수님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15: 5-8, 24). ②현재의 부활 : 예수님의 부활에 내가 동참함으로 내가 그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깊이 생각해보면 살아계신 예수님은 그 때 그 무덤을 현주소로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현주소로 삼고 여기 와 계신다. 주님은 2천년전 유대 땅에 계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면서 우리의 심령을 현주소로 삼고 나를 성전 삼아 여기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죽은 자의 주님이 아니요, 산 자의 주님이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심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며 살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며, 그리스도의 가치관으로 살며,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적 부활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③미래의 부활 : 우리 성도들은 언제 부활하는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우리 모든 성도들은 부활하여 영생복락의 세계에 들어갈 것이다(51절).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산다.
결 론 기독교신앙은 부활신앙이다. 주님의 부활은 성경대로 살아나신 사건이다. 우연의 사건이 아니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전15:3-4).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증거하는 종교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인 동시에 신앙의 사건이다.
그래서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고, 부활 신앙이 없으면 기독교인이 아니다. 부활을 못 믿는 교인은 아직 구원받은 성도는 아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 25-26). 그래서 부활을 믿는 자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순교까지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오늘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사 우리의 산 소망(벧전 1:3)이 되신 부활의 주님께 경배 드리자.
여자들이 미장원에 가서 미용할 때 3단계 원리가 있다. 제일 처음에 가면 얼굴을 거울에 비춰준다. 그 다음에 세수를 한다. 그 다음에 머리를 손질하고, 마사지를 한다. 교회는 신령한 미장원과 같다. 일주일동안 머리가 흩어지고 온갖 더러워진 성도들을 교회에 모셔 와서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로 비추어 보면서 자신의 죄악 된 모습과 더러움을 본다. 그러면서 죄를 회개하여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을 받는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 다음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심령에 기름을 부어 아름답게 단장해주신다. 왜 그렇게 해주시는가? 우리의 신랑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될 때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매일같이 단장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구름타고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우리 성도들은 흠 없고 점도 없는 아름답고 깨끗한 주님의 신부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재림과 부활의 신앙으로 승리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