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드림포럼 대표
「오래전 EBS에서 방송에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출근 시간 지하철역 근처 횡단보도에서 한사람이 길을 건너지 않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행인들은 힐끗 쳐다볼 뿐 아무도 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또 한사람이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에 뭔가가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출근시간 전까지 직장에 가야 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세명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행인 중 상당수가 하늘을 쳐다보았고 이윽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은 하늘을 쳐다보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는 1969년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뉴욕의 거리 한복판에서 실시한 실험을 재현한 것으로써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제3의 법칙’ 이론의 실험입니다. 바쁜 대중 속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세사람을 차례로 투입하면 어떤 변화를 끌어내는지 확인하는 실험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은 올바른 사회 정의를 위해 적용할 수 있는데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바른 일을 하는 세명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으로 때로는 수많은 대중을 바른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만, 역으로 상황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인터넷 퍼온 글)
이른바 스탠리 밀그램의 ‘제 3 법칙 실험’에 의하면 ‘한사람, 또 한사람 그리고 다시 또 한사람‘ 그렇게 3사람이 있다면 변화를 이끌어 낼수 있다고 합니다.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입니다.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도전 과제에 얼마나 잘 응전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데, 그 열쇠가 ‘창조적 소수’에 달렸다.”고 설파하면서 ‘지배적 소수’(Dominant Minority)도 말합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하나님과 역사의 음성을 겸허히 듣지 못하고 자기 과시나 오만에 빠진다면 대중다수들을 폭압으로 억누르는 ‘지배적 소수’로 타락하게 되며 결국 쇠퇴를 거듭해 멸망하게 되는 것이 역사였다.”고 통찰합니다. 즉 ‘역사적으로 ‘지배적 소수’가 도전에 제대로 응전할 능력을 상실할 때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말았다. 세계 4대 문명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이집트 문명뿐만 아니라 미노스 문명 등 한때 엄청난 수준의 문명을 꽃피웠다가 사라진 지구상의 14개 문명 소멸 원인의 공통점은 바로 ’지배적 소수의 타락‘이었다.’고 부연합니다.
‘창조적 소수’와 ‘지배적 소수’. 처음에는 ‘창조적 소수’였을지라도 점점 사회가 안정되어 가고 부가 축적되며 권력과 힘의 권좌를 안일하게 누릴 때, 이에 비례하여 ‘창조적 소수’는 점점 ‘지배적 소수’로 전락하게 되고 맙니다. 문제는 이 ‘지배적 소수’때문에 대다수 대중들인 사회가, 국가가 결국 쇠퇴을 길을 걷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수의 대중들은 ‘창조적 소수’가 자기 자리를 끝까지 잘 지켜 나가 ‘지배적 소수’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며 견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사울을 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점지하여 택하고 세우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초창기 하나님을 경외하는 ‘창조적 소수’의 자리에서 있다가 점점 왕권강화로 인한 ‘지배적 소수’의 자리로 타락했을 때 결국 대다수 대중들인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침략으로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사울과 그 가족들도 하나님의 심판에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삼상 31장)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또다른 ‘창조적 소수’인 다윗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다윗도 왕권의 안락함에 빠져 자신의 충복인 우리아 장군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탐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적 소수’인 다윗이 ‘지배적 소수’로 갈려는 즈음에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고 이에 다윗은 철저한 회개로 응답하여 다시 ‘창조적 소수’의 자리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더욱더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대다수 대중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솔로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시절에 이스라엘은 주변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큰 국가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왕권 강화로 ‘지배적 소수’의 길을 걷고 있을 때 하나님은 다윗처럼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고 직접 꿈에 2번이나 나타나셔서 경고하셨지만(열상 11:9) 그는 끝내 회개치 않아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어 남왕국과 북이스라엘로 나라가 나뉘게 되었고 결국 BC 721 북왕국과 BC 586년에 남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경과 역사적 교훈들을 영적으로 뼈속 깊이 새기고 또 새겨야 합니다. ‘’공교회‘는 ’하나님의 땅‘입니다. 하나님은 공교회 지도자인 성직자에게 하나님의 땅인 공교회를 다스리라 부르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자리는 ’소명의 자리‘입니다. 또한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은 모세를 도운 아론과 훌처럼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영적 지도자인 성직자들을 도우라고 세워주셨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모두다 하나님의 땅인 공교회에 ‘창조적 소수’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점점 부흥하여 커가면 어느덧 이들이 먼저 권좌에 앉아 ‘지배적 소수’로 사고하고 군림합니다. 이때 교회에 사단이 틈을 타게 되며 많은 어려움을 겪는 등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속한 성도들도 소모적인 일들에 휩쓸려 점점 영성이 고갈되어 시험들고 고난을 겪게 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합니다. ‘창조적 소수’의 덕목은 ‘하나님을 경외, 겸손함, 회개의 용기’를 통해 ‘자기 자리’가 ‘지배적 자리’로 가고 있지는 않나 늘 깨어 성찰하는 처절함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창조적 소수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야 합니다. 단풍이 만연해 가는 이 가을에 성직자나 평신도 지도자나 성도들 모두 ‘내 신앙의 자리’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면서,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환경을 지배하는 3사람인 ‘창조적 소수’로 살려고 다시 한번 옷깃 여밀 때, 바로 그 3사람들인 우리를 통하여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집단 공동체가 살고, 사회가 살고, 나라가 살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입니다. 내가 그리 되어준다면 나를 통하여 수많은 생명의 역사가 이어지는 기적들이 주변에 자주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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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