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회와 컬러사회

은희곤 목사

평화드림포럼 대표

『캥거루는 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아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상체, 하체 모두 근육질로 탄탄한 몸을 가진 캥거루는 강력한 발차기로 상대를 강타하며 싸웁니다. 게다가 캥거루의 발톱은 생각보다 뾰족해 복부를 가격당했을 땐 자칫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건강한 성인 남성도 쉽게 제압하기 힘든 동물 중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캥거루에게 가슴팍을 걷어차여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발톱에 베이는 바람에 22바늘이나 꿰매야 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그런데 캥거루를 제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자세를 낮추는 것입니다. 캥거루는 싸울 때 상체를 꼿꼿이 일어선 채 싸우는데 자세를 낮춘다는 것은 싸울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습성을 지닌 타조가 있습니다. 타조는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조류로 꼽히는데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이 괴팍해 종종 사람에게 돌진하고 공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조를 제압하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바로 손을 최대한 번쩍 드는 것입니다. 타조는 자신보다 큰 상대에게 잘 공격하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퍼온 글)  

 

캥거루와 타조의 습성을 알면 제압(?)의 실마리를 찾아 나갈 수 있습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입니다. 미국의 사회철학가인 찰스 케터링은 「문제를 바르게 파악하면 절반은 해결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문제들에 직면합니다. 매일매일이 문제 앞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 자체에 겁을 먹고 두려워 의기소침해 주눅 들거나 떠드는 사람,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무작정 달려들기만 하는 사람, 이리저리 살피며 쌩쌩 머리를 돌려 오히려 단순한 문제를 한참 복잡하게 꼬이게 만드는 사람, 두드려 보고 또 두드려 보며 평생 두드려만 보다가 문제를 키우고 시간 소비하는 사람, 문제를 직시하고 그 문제가 생긴 이유와 동기와 내용들을 정확히 파악한 후 침착하게 문제해결의 길을 생각하며 나서는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부류의 길을 가십니까? 요즈음 너무나 대립되어 양극화된 사회(사람들, 군집들)를 바라보면서 문제가 생긴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그중 하나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1990년 서독과 동독이 통일되기 전 동독 사람들은 컬러 TV를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이유는 서독과 동독이 문화 교류 차원에서 상호 간의 TV를 볼 수 있게 되면서 동독 사람들도 서독 사람들처럼 컬러로 TV 프로그램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일화 중 하나입니다. 동독에 한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궁금해서 다른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흰색도 색일까?" "물론 색이지." 그러자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검은색도 색일까?" "물론 검은색도 색이지." 동료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질문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럼 내 흑백 TV도 컬러 TV네." 맞습니다. 흑백도 컬러(color)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해도 컬러입니다. 여기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 인종들이 함께 모여도 더 좋은 컬러입니다. 민주적인 사회는 다양성이 특징입니다. 다양성의 특징은 자기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존중’입니다. 이분법적인 '흑백 사회'는 항상 대립과 적대의식으로 문제를 만들지만 그러나 흑백도 컬러임을 인정하는 ‘수용과 존중’이 있는 다양성 즉 관용의 아름다움이 살아 움직이는 '컬러 사회'는 직면한 대립과 적대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갑니다. 각계각층에서 이러한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해 나가는 성숙한 ‘컬러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교육과 훈련과 삶이 이뤄져야 합니다. 다음세대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기반을 닦고 물꼬를 터주는 시작입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으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창 9:13)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은 각자의 색으로 존재합니다. 각각의 색들이 각각의 색들을 존중하고 수용해야 무지개라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 ‘컬러사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일이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하며 하나되는 아름다운 ‘무지개 컬러사회를 만드는 일이라면 너무한 비약일까요?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계속 흑백을 컬러로 수용하지 못하는 ‘흑백사회’로만 간다면 분열과 대립의 심화된 양극화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결국 공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개인이나 군집들이나 사회 안에서 흑백을 컬러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컬러 사회’를 지속적으로 지향해 나간다면 결국 선명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무지개를 보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서 나와는 다른 것들(방식, 사고, 판단, 가치관, 방향, 길 등등)에 대한 비판과 대립을 스스로 가라앉히고, 나와는 다른 것들을 수용하고 존중해 나가는 ‘스스로의 컬러훈련’을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기도하며 실행해 나간다면 우리들 앞에 직면한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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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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