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드림포럼 대표
「'황제'라고 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떠 오릅니다. 너무나 대단하고 굉장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그 같은 권력을 갖기를 꿈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권력승계를 보면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이후로 314년 동안, 황제가 자그마치 37명이나 바뀌었습니다. 황제의 평균 재임 기간은 8.5년입니다. 그런데 37명의 황제들이 바뀌게 된 이유는 바로 암살때문입니다. 37명 중 24명의 황제가 암살당했습니다. 다른 황제들의 죽음도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살, 처형, 병사(病死), 전사(戰死) 등 황제라는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어떤 황제는 황제가 되고 로마로 즉위식을 하러 가는 길에 죽기도 했고 1년에 황제가 5번이나 바뀌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선망했던 로마제국 황제의 금관은 결국 피로 얼룩진 불행한 역사였습니다.」(퍼온글) 그러나 로마제국 314년동안 그때도 여전히 역사 속에 변함없이 존재한 사람들은 힘없는 민초(民草)들이었습니다. 황제의 권력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고 억압과 핍박의 대상들이었으며 이름도 없이 살았던 민초들은 없어질 듯 사라질 듯 하면서도 그 특유의 끈질진 생명력으로 생존하며 뿌리를 내렸고 점점 역사의 주인으로 자리 잡아갔습니다. 당시 기독교도 어마무시한 핍박과 탄압의 대상이 되어 힘든 나날들을 보냈지만 오히려 그 가운데서 복음은 사랑과 평화, 위로와 용기 그리고 소망으로 이들 민초들과 함께 했고 이들은 결국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고백했습니다. 이후 기독교의 민초들과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의 권력과 힘을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과 힘의 노예에서 자유하여 오히려 그들을 견제하며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자들을 돌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서 꿈꾸는 민초(民草)들로 민생(民生)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의 권력과 힘을 쫓아가는 세상의 일부 정치성향의 권력지향적 교회들과 지도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당시 로마제국 314년 동안 자그마치 37명이나 황제가 바뀌고 평균 재임 기간은 8.5년이었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화려한 꽃의 아름다운 붉은색은 열흘 이상 가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역사적 교훈 삼아 그 길을 돌이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사회가 걱정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선한 영향력을 끼쳐 나와 내 자손들이 살아야 하는 이 사회를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가고 물려줘야 합니다.(Always –ing) 이를 위한 덕목들이 많겠지만 오늘 그중 하나인 ‘크랩 멘탈리티’를 나눕니다. 양동이 안에 게 한 마리만 담아 두면 알아서 기어 올라와 빠져나갈 수도 있지만 여러 마리의 게가 함께 있으면 한 마리가 나가려고 할 때 다른 녀석이 그 게를 잡고 끌어내려서 결국 모두가 못 나가게 됩니다. 이를 가르켜 '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라고 합니다. 남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지 못하고 끌어내리려는 마음가짐과 태도입니다. 우리 속담 중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말이 이와 같습니다. 이런 마음과 태도들이 쌓이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계속 쌓이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모든 생활과 일들에서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개인의 죄성들’이 모여 ‘사회적 집단죄성’이 됩니다. 악한 영들은 이렇게 개개인과 집단 죄성에 강력하게 침투하여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이어지는 미움과 증오를 이용하여 오늘 분열과 분란으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와 교회의 고질적인 극단적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그 출발점은 ‘인간의 죄된 본성’입니다. 우리는, 교회는 인간의 죄성들 중 하나인 ‘크랩 맨탈리티’ 앞에 ‘아니오!’를 외치며 악한 영의 시험과 유혹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위에 세워진 교회가 정의와 공의 그리고 평화와 나눔과 섬김의 ‘상생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나가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한 교회의 주일학교 운동회 어느 날, 마지막 경기로 이어달리기가 있었고 이때 1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결승선에 거의 다 와서 넘어졌습니다. 2등이던 아이는 곧장 달려가기만 하면 1등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2등 아이는 달리기를 멈추고 되돌아가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러곤 둘은 손을 잡고 함께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어른들과 어린이들은 말이 필요없는 귀한 기독인의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날 청군, 백군은 모두 승리했습니다. 이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요 하나님 나라의 지표입니다. 연못에 힘이 약한 물고기가 죽으면 강자의 승리가 아닙니다. 연못 물이 썩으면 승리한 강자도 따라 죽게 됩니다. 연못물이 맑아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세상, 우리 모두 함께 기뻐하며 함께 행복을 꿈꾼다면 이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상생 생명공동체,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런 하나님 나라를 기도하고 꿈꾸며 실천하는 것이 교회와 성도들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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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