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장로 안되었어요?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어제도 인근교회 장로임직식에 다녀왔다. 임직자는 장로 한 명. 성가대의 찬양과 깔끔한 설교가 마친 후 단에 올라가 내게 맡겨진 축사와 권면을 했다. 이어진 임직 순서, 서약과 안수기도 그리고 임직패와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임직자가 속한 남성중창이 울려 퍼진 후 담임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목회자의 아들로 자란 임직자인 신임 장로는 엊그제 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며 성도들과 교회에 부끄럽지 않은 장로, 세상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장로가 되겠다고 인사를 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감동이 흐르는 이 날 임직 감사예배의 하이라이트는 담임목사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교회에 한 명의 장로를 세우는 담임목사는 안수기도하면서, 임직패를 읽으면서, 축도하면서 자주 울먹였다. 장로를 세우며 울먹이는 목사에게서 이 교회의 참모습이 보였다.

몇 달 전 SNS에, 제법 규모 있는 교회에 출석하는 한 집사님의 글 몇 줄이 눈에 띄었다. 자세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장로 직분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써놓았던 몇 줄의 글이었다. “나이도 60을 훌쩍 넘겼는데 아직도 장로가 안(못)되었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솔직히 기분이 안 좋다는 고백과 함께 아무리 봐도 잘 훈련된 교단소속 교회가 아닌 교회에서 어떻게 장로직을 받은 것 같은, 나이도 더 젊은 사람(그분의 표현)이 시간이 좀 지나면서 자기를 “O 집사는 왜 그래~~?”라며 반말 비슷하게 말하는데 속이 뒤집히더라는…….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면서 “직분이 뭐 중요한가,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교회 섬기면 되지…. 평생 교회 생활 해온 내가 잘 살아온 것인지 바보같이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내용의 글이었던 것 같다.

한국교회의 장로 직분에 대한 의견 다툼은 꽤 오래되었다. 장로(長老)라는 한자어의 의미부터, 장로 선출에 대한 문제, 임직 예배와 교회 행정과 치리(治理)에 권한까지, 결국 많은 교회 싸움의 불씨가 장로(목사와 장로)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본격적 직분에 관한 논쟁이 일었던 것이 벌써 20년쯤 전이다. 당시 서울의 한 교회가 장로와 권사들에게 특별한 직무 대신 단순히 명목상의 호칭으로 사용하는 데 대해 소속 교단으로부터 비판과 논쟁이 일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교회는 소속 교단으로부터 탈퇴하게 되었다.

이민교회 현실 속에서 교회의 직분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성숙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미 치리(治理)를 잃어버린 교회, 본질(本質)이 희미해진 교회의 현실 속에서 직분이 가져야 하는 ‘거룩과 진실과 성실’이 무시와 조롱을 당하고 동네 ‘아줌마’ ‘아저씨’ 또는 그 흔한 ‘사장님’ 같은 호칭 수준으로 취급당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원칙이 없어 혼탁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가진 능력이 힘을 잃었기 때문에 혼탁해진 것이 아닌가? 우스갯소리로 사랑교회에는 사랑이 없고, 은혜교회에는 은혜가 없고 소망교회에선 소망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 농담에도 이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모습들, 친절하지도 않고 가격도 만족스럽지 않은 가게에서 장로님으로 불리는 것으로 위세를 떠는 사장님들이 살아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장로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당분간 위장(僞裝)하고 앉아있는 교회의 해법은 무엇일까? 도무지 장로로 세울 수 없는 사람의 세상 권력을 이겨낼 수 있는 목사는 얼마나 될까? 성경과 교회 헌법은 장로와 직분자 들에 대해 분명한 지침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이미 무너진 담으로 온갖 들짐승들이 맘대로 드나드는 것처럼 만신창이가 된 이민교회라고 말하면 너무 가혹한 것인가? 목사와 장로라는 호칭을 돌쇠, 마당쇠로 바꾸면 어떨까? 목사회를 돌쇠 모임으로, 전국 장로협의회를 전국 마당쇠 모임으로 하면…….

한국의 초기교회 역사는 교회의 신성함과 성결함을 강조했다. 오늘 이민교회는 그 거룩함과 성결을 놓치고 듣기 좋은 말로 약함과 더러움과 무지함과 욕심들을 포장했다. 그래서 외형은 흠잡을 데 없는 비싼 상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듣기 좋은 말로 선물 포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하는 강직(剛)한 교회가 필요한 시대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그래야 아직 ‘장로가 안(못)된’ 사람들도 마음에 아무 거리낌 없이 평안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djlee7777@gmail.com

04.2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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