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교회, 풀러 Th. M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불안(Angst)이 인간의 기본조건이라고 하였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죄로 인해 인간은 샬롬을 잃고 불안을 얻었다고 하였다. “세계에 홀로 마주하는 두려움과 떨림이 인간의 기본조건이다. 모든 인간은 두려움과 떨림 속에 살고 있으며, 이 두려움과 떨림에서 면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대상을 향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저 두려운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라 그저 불안한 것이다. 가끔 불안을 망각할 수는 있으나 근원적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그의 말은 결국 인간이니까 불안한 것이고 불안해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죄에 빠진 인간의 숙명이고, 인간이 불안한 것은 정상이다.
불안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불안하니까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앞둔 학생은 불안하니까 시험에 대비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높은 데 올라가면 불안하니까 뛰어내리지 못하여 생명이 보호받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불안도 있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데 시험을 준비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하거나 시험이 끝났는데도 불안해하거나 시험 볼 날이 아직도 멀었는데 불안하다면 비정상적이다. 높은 데 올라가는 것이 불안한 것은 정상인데 아예 조금만 높아도 불안 정도가 심하거나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정도라면 비정상이다. 이런 불안 장애가 되면 단순하게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신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불안 장애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세계 인구 절반 정도는 일생에 한 번 이상 경험한다는 공황장애는 심한 불안과 초조감,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에 호흡조차 곤란해지지만, 병원에 가보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 매사가 걱정인 범불안장애는 건강, 재정, 죽음, 가족 문제, 인간관계 문제,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 과도하게 걱정하고 불안하여 늘 초조하고 잠도 잘 못 잔다. 특별한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과거의 경험이 꿈이나 회상을 통해 자꾸만 반복적으로 괴롭히기에 견디기 힘들어한다.
야곱은 20년 만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자기 형 에서에게 저지른 과거의 죄로 인해 너무나 불안해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게 불안해하였다. 그 고통의 절정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홀로 남아 어떤 사람과 씨름한 것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사건을 기도로 이해하지만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은 학자도 있다. 브리스맨은 여기서 등장하는 “어떤 사람”을 에서와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야곱의 자아를 가리킬 수도 있다고 하였다. 마음으로는 에서를 만나 용서를 빌고 화해하기를 원하지만, 몸으로는 차마 그런 길에 나서지 못했던 야곱의 자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야곱은 밤새도록 자기 자신과 처절하게 다툰 것이다. 죄악 된 자기, 자기 욕심에 빠른 자기, 모든 것을 제 고집대로 하려는 자기,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자기와 싸운 것이다. 드디어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과 축복을 받은 후에야 야곱의 불안은 사라졌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싸워 이긴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새사람,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온몸과 얼굴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고 이화여대를 떠났던 이지선 교수가 23년 만에 다시 모교의 교수로 돌아가면서 첫 출근의 감회를 한 단어로 “충만”이라고 하였다. 충만이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기에 모자라거나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 아닌가? 그녀는 예수를 만났기에 자신의 삶을 보는 시각과 마음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사고를 만났으나 지금은 헤어져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충만”이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예수로 충만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풍파도 두렵지 않다.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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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5.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