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기독교신앙의 핵심 단어는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위대한 이유는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에 있고, 그 승리로 인하여 인류에게 주어진 ‘구원’의 실체가 그 생명인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신앙은 살리는 신앙이고, 생명을 누리는 신앙으로의 존엄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은 바로 이 생명의 존엄성을 침범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최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신문은 <한인 전도사, 부인 딸 살해 후 자살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1면 TOP으로 기사를 실었다. “...한인 대형교회에서 전도사로 근무하고 있는 50대 한인 목회자가 부인과 어린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가족과 함께 숨진 정 전도사는 1.5세로 영어권이며 청년 시절부터 20년 넘게 D교회에 출석했으며, 몇 년 전 중고등부 전도사로 부임해 영어권 2세들의 교육을 담당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된 사건에 대한 추측과 더불어 나름대로의 분석을 섞어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이민교회 안에서, 특히 목회자들의 개인 SNS나 모임에서 나누어지고 있다. 물론 충격이었다. 그러나 충격보다 더 큰 안타까움은 “그러면 안된다고, 참았어야 한다고, 신학도 공부하고 전도사라며?, 자살하면 천국 못 가는데, 저 혼자 죽지 어린 딸은 왜 죽여?, 도대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한 거야...” 라는 뒷이야기들이다.
이 사건을 다룬 언론들은 모두 대형교회, 전도사, 그리고 살해, 자살과 같은 단어를 앞에 내세운 단회성 기사일 뿐이어서 늘 그렇듯이 이 사건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각자의 몫’으로 던져버린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단편적인 내용을 갖고 추측을 주고받는 가운데 세상에서는 교회의 구조문제나 처우문제에 화살을 쏘기 시작하고 있다. 일부 목회자는 구체적으로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불평등 관계를 끄집어내거나 실제 사례비 규정들을 짚어서 비판하고 있다.
마침 D교회는 우리 교회와 5분 거리에 있고, 교인들 중에도 이웃들인 분이 많다. 아무래도 이 교회 교인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위로보다는 수군수군, 지적과 비판이 앞서있는가 하면 심지어 이런 사건이 우리 교회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표현도 접하면서 참생명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오늘 우리 이민교회의 모습이 아프고 당혹스러울 뿐이다.
가족살해와 동반자살 같은 단어를 검색해보고, 생명문제에 대한 교회논문들도 찾아보면서 위로, 구원, 진리와 같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단어들과 연결된 성경 말씀들도 찾아보았다. 사건의 수사는 경찰이 해야겠지만,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 때 교회는 무엇부터 먼저 해야하는지 혼란스러운 마음에 자료들을 뒤적여보지만 한동안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것은 아마 모든 목회자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한국 초기 교회역사에 선교사의 자살사건이 있었다. 1893년 12월에 캐나다를 떠나 한국에 온 맥킨지(W. J. Nckenzie) 선교사는 빨리 한국말도 배우고 생활양식을 배워 전도하겠다는 열망으로 평양이나 서울같은 도시가 아니라 깡촌이었던 황해도 솔내로 들어갔다. 2년여 주민들을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섬겼는지 그 지역에서는 폭넓은 인정과 존경을 받아 성자라고 불릴 정도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고, 심지어 동학당이 이 지역을 휩쓸고 지나갈 때도 주민들이 나서서 보증을 서주어서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일사병에 걸려 고열(高熱)에 정신착란증세가 생겼고 이후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갖고 있던 총으로 머리를 쏴 스스로 숨을 끊었다. 선교사의 자살(自殺)이었다.
그러나, 캐나다장로교의 한국선교 관련 문서 어디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다고, 그 정도도 이기지 못하면서 왜 험한 오지(奧地)로 들어갔느냐고 힐난하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솔내 주민들이 후임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청원서와 교단 선교부에서 5명의 선교사를 이곳에 파송했다는 응답이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사건 앞에서 당장 쏟아낸 판단은 정확하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으며 지혜롭지도 않고 생명적이지도 않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건’ 중심의 판단보다 ‘위로와 회복’ 중심의 결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역사 속에 어느 하나 하나님의 섭리가 배제된 사건이 있었는가? 우린 하나님의 뜻을 당장 알아채지 못하는 우매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생각의 표현보다 마음의 묵상을 먼저 선택해야할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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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