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알았도다

이희녕 사모 (프린스톤한인교회)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출18:11).

하나님의 산 진친 곳에 이드로가 딸과 손자 둘을 데리고 왔습니다. 모세로부터 하나님께서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신 은혜의 일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경배 드립니다. 모세가 비록 광야에서 무명인의 객으로 만난 저를 귀히 여겨주는 평생의 배려자입니다. 지극히 어려운 지경에 떨어져도 그 자리에서 살 길을 내시는 자상한 하나님입니다.

한쪽 문을 닫으시면 반드시 다른 문을 여십니다. 문이 닫힌다고 쓴 마음으로 안타까워할 이유가 없지요. 다만 여시는 대로 자세를 조절하여 주님의 인도를 부지런히 따름이 살아남는 길입니다. 기대 밖으로 힘겨워진 환경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우울증으로 자신을 내모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최대의 불순종의 죄입니다. 환경을 하나님의 주권의 사랑의 안목으로 보는 시야로 바꿔야 삽니다.

정작 생명을 걸고 돌보는 이스라엘들은 모세를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파렴치한 사람들입니다. 그저 원망하고 대적하는 것을 일삼습니다. 그런데 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도우미가 되었던 이들이 엉뚱하게 평생 은혜를 베풉니다. 오히려 이방인인 저들이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서 떡을 떼니 기가 막힙니다. 죽을듯해도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라도 일으키시어 때마다 돕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심지어 그 많은 이들을 다스리느라 감당 못하는 것이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 지혜를 베풀어 도와주는 지혜로운 장인 이드로를 모세에게 붙여주셨습니다. 아주 적절한 때에 지혜가 있는 자를 붙여주셔서 정확히 도와주십니다.

환경을 쳐다보면 영락없이 쓴 마음이 덮칩니다. 심령이 평안을 잃어버리고 주님을 바라보는 복을 놓아버립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소망이 없다고 절망스러워합니다. “내 고초와 재난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 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렘애3:19-24).

은혜를 듬뿍 입은 이스라엘은 원망을 일삼고 곁에서 지켜보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니.... 때로는 받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 은혜를 당연시하는 이스라엘보다 차라리 은혜를 모르던 이방인이 은혜를 입으면 순진하게 하나님께 순전한 감사를 드리는 것을 보며 깊이 회개합니다. 나의 기업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무궁한 자비하심으로 주께서 종래 우리를 일으키시는 주님의 기업됨을 믿게 하소서! 매일 매일 성실히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받는 고통이 나와 주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벽이 아니고 가까이 붙여주는 풀이 되게 하소서!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기적이 나를 따르는 분복을 주소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역사를 이루는 지혜의 은사를 더하시고 담대히 이를 믿고 나아가도록 부활의 권능으로 나를 덧입히소서! 주님, 제게 임한 모든 것을 은혜로 보이는 감사의 눈을 크고 깊게 밝혀 주소서! 이메일 : heenlee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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