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 백성, 나는 너희 하나님

이희녕 사모 (뉴저지복음장로교회)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너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지라”(출6:7).

교만한 바로와 역사의 혹독함으로 인해 더욱 완악해지는 백성들 사이에서 점점 절망을 느끼며 못하겠다 호소하는 모세입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입니다. 태어나며 익숙해진 습관을 바꾸기란 천재지변이 나면 모를까 쉽지 않습니다. 보고 듣는 것에 의존해 모든 상황을 판단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런 상황에 갑자기 나타나시어 전혀 상황을 바꿔주지도 않으며 하나님은 계속 약속만 하시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요구하십니다. 진짜로 약속을 지킬지? 아니 지킬 능력이 있는 참 신인지? 도무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시야에는 오직 고통스런 상황만이 확대대어 들어올 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도,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도 딱히 경험해 보지 못한 저들에게 빈 말은 통하지를 않습니다. 봐야 믿지.... 믿음이 없기론 모세라고 또한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믿어지지 않으나 힘든 일을 맡긴 하나님께 나아와 투정하는 것이 백성들보다 조금 낫다고나 할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막연히 알고 있습니다마는 막상 폭풍우가 몰아치니, 믿음이 뿌리 채 흔들리는 실제의 모습이 나옵니다. 출애굽은 하게하시되 바로를 더욱 강퍅케 해서 이스라엘과 모세의 믿음을 테스트하며 다져나가십니다. 보는 것에 의지하는 믿음을 하나님의 인격을 믿고 따르는 긴밀한 신뢰 관계의 믿음으로 바꾸어 가십니다. 내가 원하는 요구하는 기복신앙에서 눈에 아무 증거 보이지 않아도 주님이 나의 최선임을 신뢰하는 깊은 사랑의 관계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아직 그의 백성이 된 특권도, 여호와가 저들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합니다. 그저 몰려드는 어려움에 치여 하나님 바라볼 여유가 없습니다. 귀를 열어야 할 믿음에는 원망을 쏟고, 부추기는 상한 마음에는 불평의 칼날로 난도질을 해댑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지요. 염려중독에 빠진 자신이 자신에게 가장 큰 적입니다.

지도자 자신도 인도해야할 백성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원망하는 백성도 바로를 움직이는 것도 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 본래 자원한 것도 아니니 다 팽개치고 나 몰라라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불평스런 상황을 안고 주께 나아가 엎드러져 지금의 기막힌 형편을 낱낱이 고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관계로 온전히 전환하기까지 결코 고통스런 훈련의 손을 늦추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극한 불가능한 상황을 통해야 겪어봐야 그 진가를 알게 됩니다. 수 없는 문제를 통해 하나님과도 잔정이 깊어져야 내가 진정한 그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바뀌는 출발점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솔직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서 시작됩니다.

저희의 어리석은 모습을 한스러워합니다. 그토록 기막힌 기적에서 기적으로 이끌어주신 이제까지의 삶인데 조그만 바람이 불어도 너무나 쉽사리 무너지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주 당연한 듯 자동적으로 좌절하는 저입니다. 주님을 안다하며 의시 대던 내가 어디로 갔는지 참으로 당신의 대한 믿음도, 신뢰도 고작 이것뿐입니다. 오 주님! 바라봐야하는 대상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만을 신뢰하고 따르는 온전한 믿음으로 부어주소서! 주님께서 하시겠다하시면 저의 모든 불신을 넘어 정녕 주님의 저를 향하신 뜻을 확신하도록 믿음을 부어주소서!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너를 잊으셨어? 부추기는 이 마귀의 소리를 과감히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주님의 사랑의 확신 위에 온전히 붙들어 매소서! 이 내 마음이 또 다시 몰려드는 환난에 부대껴서 주님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 된 마음을 소유하도록 주님의 일하시는 손길이 보여지도록 영안을 밝게 열어주시어 믿음의 지팡이를 담대히 내밀어 홍해를 여는 모세의 길을 가도록 우뚝 서게 하소서~. 이메일 : heenlee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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