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하나님

이희녕 사모 (프린스톤한인교회)

사울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존재인가요? 그야말로 자신의 입지만을 세워줘야 하는 자신의 종입니다. 인간됨을 버리고 권력에 집착하는 그를 돌이켜 왕다운 왕이 되도록 하나님은 기리도 참으시고 애쓰셨건만, 왕권의 집착으로 분주한 그의 마음엔 하나님의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위험을 막아주는 도구일 뿐이지 인격적인 만남은 전혀 이루어지질 못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은혜의 기회를 참으로 미꾸라지 빠지듯 자기 합리화를 너무도 잘하여 번번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을 택하는 비극적인 사람입니다. 본인이 금하여 쓸어버린 신접한 자를 마지막 카드로 긁어보는데…차라리 모르는 상태에서 죽기로 싸웠던들 그 정도로 실망했겠는가? 최악의 소식에 완전히 혼이 다 달아나니….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보다 나은가요? 어려운 일을 코앞에 두면 점쟁이를 찾는 집사, 권사들로 장사진이란 얘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예언의 은사를 점쟁이식으로 남용하는 변절된 은사자들의 횡포가 가능한 것은 사울처럼 답답하니 발길을 돌려 하나님을 달래 보겠다는 것은 똑같은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너무도 오래 동안 침묵하시고 하나님이 대답하시지 않을 때 그럼 우린 어찌해야하나요?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답하지 않을 뿐 하나님은 침묵가운데 답하고 계십니다. 침묵 자체가 그 대답입니다. 법석 떨지 말고 조용히 어지러운 상황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곰곰이 하나님 앞에서 붙들어 앉히고 정리 정돈하라는 뜻이십니다.

조용히 분요한 마음을 가라앉히면 분명코 회개할 부분들을 찾게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인을 뿌리 뽑아 주시려하나, 우리는 당장 아픈 증상만 없애주길 원합니다. 그러나 증상만 잠시 없어진다 해도 그 뿌리가 남아 있으면 문제는 더 깊어져있게 마련입니다. 아니 증상만 살짝 살짝 없애주면 오히려 썩고 썩어 필경은 속수무책의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아~ 사울의 길을 가는 기복신앙, 종교의 영에 묶인 자들이 얼마나 교회 안에 즐비한가요? 교회 밖의 불신자보다 교회안의 불신자가 더 중증 환자들입니다. 사랑의 주님!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 자의 노력은 결국 허사로 돌아감을 보며 우리의 수고가 향방 없이 쏘아대는 무모한 화살같이 되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작고 큰 모든 수고가 모두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통로로 쓰임받기를 다시금 정신 차려 마음을 추스려봅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는 화려함보다는, 흠모할 모양이 하나 없는 이 모습 이대로 일지라도, 주님이 기뻐하실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 어려움을 축복의 기회로 바꾸는 다윗의 일생처럼 살기 원합니다. 범사에 감사할 제목이 크게 보여지는 은혜의 눈이 밝아지게 주님의 밝은 안경을 씌워주세요. 환경가운데,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 크게 크게 보이는 그런 은혜를 주세요. 눈에 아무 증거 보이지 않아도 다윗의 길을 가는 이들이 마음에 할례 받고 주님의 심장이 크게 고동치며 주님으로 인해 죽고 사는 산 믿음가운데 거하길 갈망합니다. 부를 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힘을 얻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 내도록 모든 사납게 부추기는 불순종의 가지들을 쳐버립니다. heenlee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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