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엘리는 사람들이 여호와께 경배 드리러 올 때 성전 문설주 곁에 앉아 있습니다. 입 밖으로 기도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로 절박히 기도하는 한나에게 술을 끊으라고 권고하나, 사정을 말하니 기도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들어주시길 원한다고 통례대로 예기해줍니다.
엘리가 아는 하나님은 통례적으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자기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섬기며 하나님께 가져오는 예물 중 좋은 것을 자기 몫으로 챙기며 제사장 노릇을 해도 한 마디도 않고 모른 척 아무 상관없이 온 집안이 먹고 삽니다. 여기서 엘리의 문제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절박히 기도하는 여인과 술 취한 여인을 구별 못해 술을 그만 끊으라 예기할 정도로 영적인 일에는 관심 없고, 그저 직업으로 성전에 앉아 물질만 밝히고 하나님 일에는 관심도 없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의 대화도 별로 없이 이 땅에 안정된 삶에 눈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인생이 그리 계속 편안해주면 다행이건만 예고 없이 풍파가 불어 닥칩니다. 그 날이 그 날로 잘나가다 전쟁이 나고 불안해지니 언약궤를 엘리의 두 아들이 가져오게 합니다. 블레셋이 있는 힘 다해 공격하니 하나님의 궤는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들은 죽음을 맞습니다. 평시에 하나님을 이용하다가 위기가 오니 언약궤 자체에 무슨 마력의 힘이 들어 있는 듯이 바싹 앞세우나 그저 빈 상자일뿐 하나님이 함께 힘써 주시질 않습니다.
요즘 세상에 널린 직업화된 교회 사역자들을 바라보며 그 안에 정작 하나님은 이름 뿐의 마스코트처럼 상징적인 존재일 뿐 삶의 중심에서 배제된 엘리의 모습을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리가 사명 없이 유린당함을 영원토록 버려두시지는 아니하고 중심이 곧은 하나님의 사명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면 엘리 가정처럼 징계를 당할 그런 사역자들 가정이 얼마나 무수하겠는가? 참으로 아찔해 옷깃을 여밉니다. 과연 일평생 변함없이 하나님을 향한 초심을 잃지 않고 일평생 초지일관 받은 은혜의 심정대로 주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며, 말씀을 잘 순종하며 말씀을 사랑하는 주님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남겠는가? 등이 따스해지고 배불러지면 변하는 이들이 태반인지라 나 자신도 자신할 수 있는가? 시간이 가면 안정된 삶이 옵니다. 그러나 모든 근심거리가 사라지고 평안한 삶이 찾아듬과 더불어 주님과 진하게 나누던 말씀의 교제나 사랑의 교제가 슬그머니 형식적인 행사처럼 변질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고 떨리는 맘으로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위엔 온통 내 교회 불리기에 혈안으로 무슨 방도가 없을까 열심으로 찾아다니는 이, 그런 이들을 이용해 또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이들하며, 이 극도의 개 교회 성장주의라는 번영신학의 병이 주님의 몸된 교회들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죄인을 찾아 나서신 하늘 넓히기 사명이 사역자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내 땅 넓히기에 너도 나도 혈안인 현대교회들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이제는 하나님나라 구한다는 큰 소리 뒤에 도사리고 있던 나의 나라가 눈에 띄게 커질라치면 주위에서 온통 서서 박수를 쳐대고 그리 모방해 보려고 주고받고 박수하는 모습들이 또한 굉장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하나님을 몰아내고 바벨탑을 쌓도록 마귀가 춤추도록 오래 두시지 않으실 것을 알기에 두렵습니다. 그 자리에 디디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며 저를 봅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셨으니 할 수 있으면 먼 길로 가버린 믿음의 식구들을 불러내 초심으로 돌아와 굳건히 주님위해 헌신하길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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