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녕 사모 (프린스톤한인교회)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이름조차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다’ 입니다. 노예근성에 찌든 200만을 이끄는 광야 사역이 모세의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에 신에 감동된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하나님중심의 사고전환 훈련 과정이었다면, 여호수아에게는 의지할 아무런 기댈 세상적 조건이 없던 무에서 출발하여 그저 모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미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신이 감동하여 그가 함께하시면 무슨 일이 가능한가를 똑똑히 체험하는 여러 면모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훈련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신이 감동해 제아무리 불가능한 사건을 만나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가? 믿음만 붙들고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행동파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같이 비춰볼만한 아무런 능력이 자신에게 속한 것이 없어 하나님 앞에 얼굴 쳐박고 고민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자신이 지켜보며 만난 하나님을 의지해 말씀을 지도삼아 제사장들을 앞세워 백성들을 성결케 하고 그저 믿음으로 차근차근 가나안 정복에 임합니다.
여호수아와 관한 어느 성경을 찾아보아도 그가 고민해 우울증에 빠져 머리 싸매고 드러눕는 자기와의 싸우는 소모전은 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설령 두려움이 덮치고 과연 내가 해낼 수 있나? 라는, 진실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단순한 자신 없는 생각들이 그의 마음을 공격해 와도 “두려워 말라. 모세와 함께 한 것같이 너와 함께한다. 네가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마음의 중심을 말씀으로 기운 차리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전진합니다. 다소 차질이 생겨 작은 아이성 점령에 실패해도 곧 실패원인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이를 칼같이 찾아내어 정정하고 믿음을 세워 모두를 이끌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신이 감동된 여호수아의 심령은 어떠했을까요?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와 과연 젖과 꿀이 흐른다고 보고하다 자신들의 약함이 크게 보여 절망 끝에 화가 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맞아 죽임을 당할 정도로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할 수 있다는 청결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종래에는 그 믿음대로 모세가 죽고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당신은 강하고 담대하소서, 당신을 모세와 같이 따르리라고 한 목소리로 화합하여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가능하다는 동일한 믿음으로 통일돼 가나안 정복을 이뤄내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믿음의 승리를 끌어냅니다. 매 접전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죽기로 싸우며 승리토록 전적으로 힘을 보태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얼마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을 깊이 찬양했을지, 승리보다 오히려 함께하시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얼마나 감격의 예배드렸을지, 그 깊은 감흥의 예배심이 이 심정에까지 깊이 감동으로 파도칩니다.
여호수아는 임종을 두고 날마다 자신의 이기심에 휩싸이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저들을 위해 싸워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범사에 말씀대로 순복하여 천신만고 끝에 입성한 가나안 땅에서 한눈팔지 말고 스스로 조심하여 저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당부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믿음대로 성공하는 인생을 살 것인지? 어줍잖은 세상의 것에 연연해 땅에 속한 것에 연연하다 그저 그런 인생으로 끝날 것인지는 오늘도 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 듣는 것이 삶의 최우선 순위여서 알아들은 하나님의 뜻을 즉각 행동으로 옮기는 자임을 여호수아의 삶에서 확실히 배웁니다. 하나님 신에 감동된 믿음의 순종 행동파 여호수아가 오늘 내게 도전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은 저주의 삶, 하나님께 순종은 축복의 삶이다. 너희의 거하는 땅에서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와를 택하려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