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도처에 흩어져서 큰 종족들 간에 섞인 작은 집단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24,700명의 발키미인(Balkimi)들이다. 이들은 신드족과 친족 간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며 이 나라의 남쪽 신드 주에 거주하고 있다. 발키미어라고 불리는 이들의 언어는 인도-아리안 어족에 속한다. 이들의 삶의 양식과 문화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삶의 모습
1947년 인도대륙의 분할은 굉장한 인구의 혼란을 가져왔다. 약 3백5십만의 힌두인과 시크인(힌두교와 이슬람이 혼합된 관습을 행한다)들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인도로 이주했고 약 5백만의 무슬림들이 인도로부터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이 이동은 초기에 두 나라 사이에 고통을 야기했고 후에 영토의 일부를 획득함으로써 더욱 심화됐다. 발키미인들은 힌두교인이지만 파키스탄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파키스탄 땅의 약 26%는 경작이 가능하고 그 대부분은 관개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절반이 넘는 노동력이 농업 혹은 그에 관계된 활동에 투입되고 있고, 65% 이상의 사람들이 시골지역에 살고 있다. 생산증대에 대해서도 보상이 거의 없는 소작인들이 많기 때문에 농업생산량은 저조하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개혁과 누진세 제도가 도입됐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관개기술과 비료의 개선으로 밀생산량이 극적으로 증가됐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은 식량자급이 가능한 국가가 됐지만 때로는 주요산물이 부족되기도 한다.
밀이 주요작물이며 사탕수수도 널리 재배된다. 목화와 쌀은 주요 수출작물이다. 가축들은 많이 있지만 육류와 우유생산은 저조한데 이는 부적절한 사료공급과 저질의 관리 때문이다. 염소와 양은 가장 일반적인 가축이고 소, 물소, 낙타도 사육한다.
가족의 구성은 남성에 의해 지배되는 가부장중심제(patriarchal)이고 대부분이 대가족으로 생활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낮으며, 여성은 가정의 잡일과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제한된다. 부유한 소작농이나 지주의 가정, 도시 중산층의 가족들은 여성들을 격리(푸다,”purdah”:부녀자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관습)하여 보호한다. 만일 이들이 집을 떠나게 되면 반드시 베일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 푸다의 관습을 행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집앞쪽에 남성들의 구획(“mardanah”)이 있어서 방문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구획(“zananah”)안에 격리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가난한 이들은 대개 여성들도 농장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푸다의 관습을 행하지 못한다.
사회 구조는 카스트보다는 혈연중심적이다. 베라다리(“Beradari”, 남성을 통해 족보가 이어지는)는 가장 중요한 사회제도이다. 남자들은 아버지의 형제들의 딸들과 결혼하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많은 집단에서 결혼은 변함없이 늘 베라다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한 혈통의 원로들은 분쟁을 해결하는 평의회를 구성하며 바깥사회에서 그 혈통을 대표한다.
신앙
파키스탄의 지배적인 종교는 이슬람이다. 이는 인구의 약 97%를 차지한다. 힌두교와 기독교는 그 다음의 소수 종교집단이다. 발키미인들은 소수파인 힌두교인이며 이들의 95%가 힌두교인이다. 파키스탄의 헌법은 그 나라를 이슬람국가로 정의했으나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독교인들에게 박해가 있다.
필요한 것들
성인 파키스탄인 중 오직 35%만이 읽고 쓸 줄 안다. 제도상으로는 5년간의 무료 초등교육을 제공하게 돼있으나, 절반이 못되는 어린이만이 이 교육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출생율과 사망율이 높다. 정부는 여성고용촉진과 가족계획을 통해 출생율을 낮추기 위한 시도를 해왔으나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발키미인들에게는 아주 이들의 언어로 된 기독교 자료가 거의 없지만 3개의 선교단체가 이들을 목표로 사역하고 있다. 발키미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중보와 선교 노력이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