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타직족의 대부분은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살았었다. 구소련연방의 침입과 이에 따른 아프가니스탄 지역 장악(1978년부터 1988년까지) 이후, 아프간 집단들의 권력 싸움은 계속됐다. 혼란과 분쟁의 시기 동안 거의 5백만에 달하는 아프간인들이 파키스탄으로 피난했으며 이중 백만 이상이 타직인들이다. 아프간 타직인들은 밝은 피부색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도-이란계 사람들인데 통혼으로 인해 이들의 특징이 상당히 변화했다. 타직인들은 이란의 페르시아인들과 가까운 친척사이이고 페르시아어인 파르시어(Farsi)의 방언을 사용한다. 많은 타직인 난민들은 파키스탄에 정착했고 나머지는 난민촌에 남아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안정되어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파키스탄의 이 난민들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 부근에 좁고 긴 띠 모양의 형태로 기거하고 있다.
삶의 모습
아프간 타직인들은 대부분 농부나 목동들이다. 농부들은 목화, 보리, 밀 등 다양한 곡식을 재배하며 평편한 지붕의 진흙집이나 돌집 마을에 산다. 몇몇 주민들은 반유목민의 생활방식을 따르기도 한다. 겨울에는 마을에 머물고 여름에는 가축들을 데리고 고지대로 올라간다. 소수의 타직인들만이 주요 도시에 살면서 상인이나 숙련공으로 일하기도 한다. 타직 남자들은 전형적으로 밝은 색으로 수놓아진 모자를 쓴다.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천으로 얼굴을 가리는 반면, 타직 여인들은 숄(shawls)로 머리를 덮는다. 도시에 사는 여성들은 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으로 된 옷을 입는다.
타직인들은 민족유산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다. 인도-이란계 인종의 신체적인 특징과 언어는 중앙아시아의 다른 어떤 종족들과도 많이 다르다. 타직인들에게 있어서 전통보전은 아주 중요하며 그들의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대개 한 가족에 아이들이 일곱, 여덟 되며 결혼은 부모들에 의해 정해지고 결혼식은 전통 타직 형식을 따른다.
신앙
아프간 타직인은 99% 무슬림이며 대부분은 수니(Sunni)계열의 하나피파(Hanafite sect)에 속하나 시아(Shi’ite)계열의 이스마엘파(Ismaili)도 있다. 수니 무슬림들은 신앙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 시아 무슬림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다. 이슬람은 타직인들의 음식과 행동, 의복 등 이들의 삶에 완전히 침투했다. 출생과 유년기, 결혼, 죽음에 이르는 모든 의식을 이슬람식으로 따른다. 이슬람의 거룩한 도시인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 씩 신실하게 기도문 암송을 반복한다. 아울러 많은 타직인들은 심령술(spiritism:주문과 부적을 사용하는 미신적 관습)을 행한다.
필요한 것들
이들은 대부분 물질적 필요에 허덕이고 있다. 불결한 생활환경과 불량한 물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식자율은 겨우 10%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타직인들은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걸친 싸움은 아직도 거세다. 이들의 땅은 지뢰로 파헤쳐지고 많은 마을들이 파괴됐다. 이슬람 종교는 파고 들기가 매우 어렵다. 기독교로의 개종한 자는 그들의 가정에서 쫓겨난다. 결국 백만 이상의 아프간 타직인 중 오직 0.1%만이 기독교인이다. 신약은 이미 아프간 타직어로 번역됐고 구약 또한 곧 가능해지지만 문맹률이 높고 문서사용이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