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피로즈코히(Firozkohi)

피로즈코히족은 아프가니스탄의 중부 산악 지대에 사는 규모가 작은 종족이다. 피로즈코히족은 좀 더 크게는 차르 아이마크(Char Aimaq) 종족 집단에 속한다. 차르 아이마크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북부 지방에 흩어져 있다. 피로즈코히라는 이름은 "피루즈쿠(firuzkuh)"라는 단어에서 온 것인데 피루즈쿠는 "청록색의 산(mountain of turquoise)"이라는 뜻이다. 피로츠코히 사람들은 파르시(Farsi)라고 불리는 페르시아어계에 속하는 언어와 투르크(Aimaq)어의 어휘를 함께 사용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르 아이마크족은 이동하게 됐고 흩어져서 다른 다양한 정부들과 연합하게 됐다. 피로즈코히족은 험한 산악 지대를 따라 정처 없이 거니는 준유목 종족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세계적으로 무역 길로 알려진 곳이다. 다양한 종족집단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차르 아이마크족은 혼합된 문화유산을 형성하게 됐다. 이들 대부분은 몽골인들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징기스칸 병사의 후손임을 강조한다. 차르 아이마크족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해 활동적으로 싸웠으며, 이후 계속된 내전에도 참여했다.

삶의 모습

피로즈코히족이 한때는 완벽하게 유목민족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특정한 계절 동안만 이동하는 준유목민이 됐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있었던 가뭄과 침식으로 인해, 많은 피로즈코히 사람들이 농부가 됐다. 이들은 밀, 포도, 쌀, 보리, 귀리, 멜론, 야채 등을 키운다. 농사일에 괭이와 나무로 만든 쟁기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피로즈코히 문화에서는 농사가 여전히 주된 활동이 아닌 부차적인 활동으로 인식된다. 한 사람의 재산은 그가 가진 가축의 규모로 결정된다. 피로즈코히족은 고기, 어유, 지방, 치즈 등을 공급하는데 자신들의 가축에 의존한다. 텐트를 만드는 데도 역시 동물의 가죽이 사용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조차도 봄과 여름에는 자신들의 텐트로 나가서 생활한다. 아이마크 부족들의 일부는 도시에서 생활하며 농사짓는 동안에 벽돌로 지은 오두막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피로즈코히족은 주로 원형이며, 지붕이 둥글고, 이동 가능한 "천막집(yurt)"에서 생활한다. 피로즈코히 사회는 남성 중심적인 부계사회다. 사회에서 가족이 가장 중요한 단위다. 한 남성, 그의 부모, 그의 아내 혹은 아내들, 그의 자녀들이 한 가족을 이룬다. 어린 소녀가 결혼하게 되면 그녀는 남편의 직계가족의 일부로 여겨진다. 피로즈코히족의 종족적 일체감은 가족과 씨족에 기초한다. 피로즈코히 여성들은 가축 떼 지키는 것을 돕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들의 기본적인 일은 카페트를 짜는 일이다. 각 부족 혹은 마을마다 각기 자신들만의 독특한 패턴이 있다. 이 패턴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전수된다. 여성들은 좋은 모직 카페트를 만들기 위해 휴대용 직조기계를 사용한다. 음식을 마련할 재원은 약한 편이며, 카페트를 만들어 번 돈이 피로즈코히 사람들이 생존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가축, 현금과 함께 카페트 역시 결혼 지참금으로 사용된다.

신앙

사실상 피로즈코히족은 수니파(정통파) 이슬람교를 믿는 하나피테(Hanafite) 이슬람교도들이다. 이들은 이슬람교에서 하나피(Hanafi)가 가장 순결하다고 믿는다. 이들의 이슬람에 대한 강한 믿음은 종종 기독교를 "순수성을 잃은 일신교(corrupted monotheism)"라고 비웃게 한다. 그러나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코란에도 있는 구약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영적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한다.

필요로 하는 것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자유의 전사들"에게 군수품을 제공했다. 후에 아프가니스탄이 정치적 내전에 휘말리면서 인권은 유린됐고 이러한 군수품 제공은 끊겼다. 전 아프가니스탄이 소련과의 전쟁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많은 마을이 파괴되고 음식을 찾기 어렵게 됐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안전한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려우며, 전쟁은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피로즈코히족이 거처를 이동하고 넓게 퍼져 있어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현재 한 선교단체가 이 피로즈코히족을 위해 사역하고 있다; 그러나 피로즈코히족 가운데 신자로 알려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기도가 이들을 복음의 빛 가운데로 나아오게 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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