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용서

김창섭 목사

(세계선교교회)

창세기 31장에는 도망가는 야곱과 추격하는 외삼촌 라반이 나온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더이상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다가는 자신의 노동력만 착취당하고, 자신의 가정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니,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최적의 방법은 몰래 도망가는 것 밖에 없었다.

반대로 라반의 입장에서 야곱은 그야말로 돈 벌어다 주는 기계(cash cow)였다. 그러니, 야곱을 보내줄 수 없다. 더 오래 우리 집에 있으면서 내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게다가 야곱이 몰래 도망했으니 어떻게든 쫓아가서 야곱이 들고 간 모든 것을 다 가져오고자 했다.

그렇게 발에 땀이 나도록 도망가는 야곱과 그보다 빠른 속도로 추격하는 라반은 갈르엣 이라는 지역에서 드디어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라반과 야곱은 서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야곱아, 어떻게 나를 속이고 내 딸들과 내 재산을 다 들고 갈 수 있느냐?”

“삼촌, 내가 삼촌을 속이기 전에 삼촌이 먼저 나를 속였습니다. 내 품삯을 열 번이나 깎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말이다.

이렇게 서로 분노의 말을 던지다가 갑자기 라반의 태도가 누그러진다.

잠깐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니, 이것이 싸울 문제가 아니라, 품어 안을 문제로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숨 좀 가라앉히고 보니 야곱과 라반이 서로 적이 아니라 가족임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교회를 섬기다 보면, 교회 안에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론 사이가 좋지 않을 만한 정당한 이유는 있다. ‘저 사람이 먼저 화를 냈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한숨 돌리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화 좀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그 명분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훨씬 더 귀하다. 때로는 내가 손해를 볼지라도, 때로는 내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더 귀하다. 야곱과 라반의 대립에서 라반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가 성립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야곱과 라반이 화해의 언약을 맺은 장소에 갈르엣, 곧 ‘증거의 무더기’라는 이름을 붙었다. 그리고 이름을 하나 더 붙이는데, 바로 ‘미스바’이다. 미스바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니 이 화해를 잘 유지하자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한순간 한순간을 지켜보고 계심을 기억하자. 바로 이것을 기억하면 내가 먼저 손 내밀 수 있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 내가 손해보더라도 양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심을 믿는다면 내 자존심보다 함께 누리는 화평을 선택할 수 있다.

화해와 용서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평안을 지켜가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wmclakim@gmail.com

07.0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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