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교회)
부활주일에 전할 말씀을 준비하면서 문득 의심하는 도마가 참 안타까워 보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지 못하여 의심하는 모습이 꼭 예전의 내 모습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을 견고하게 붙들고 있지만, 그와 함께 마음 한쪽 구석에서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믿어지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보통 “도마처럼 의심하지 않게 해 주시고,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곤 한다. 물론 주님께서 이런 믿음을 선물로 주시면 참으로 좋으련만, 우리의 두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세상을 생각해보면 보지 않고 믿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 보인다.
과학을 공부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관점은 ‘정말로 그럴까?’ 하는 의심이다. 그리고 그런 의심을 불식시킬 증거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과학이다. 하지만, 어찌 과학뿐이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의심’은 꼭 가져야 하는 덕목과도 같다. 의심하지 않다가는 순진하고 미련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딱 좋다.
그러면, 도마는 정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려 했던 사람일까? 의심만 하고 믿음은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도마는 믿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라기 보다는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믿고 싶은데 자꾸 의심이 생기고, 친구들이 옆에서 믿으라고 하는데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아서 답답한 그런 사람 말이다.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아서 답답한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이 함께 가자고 찾아왔을 때 따라나서지 않았을까?
오래전에 대학부 전도사로 섬길 때, 한 청년이 성경에 의심스러운 부분을 몇 번씩 찾아서 내게 물어온 적이 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청탁했을 때 본인들이 갔습니까? 아니면 어머니가 갔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까?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까?”와 같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다르게 언급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야기했던 것이, 이런 것이 의심스러운 자기 자신이 너무 싫다는 말이었다. 그냥 믿고 싶은데, 그냥 믿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성경을 읽을수록 자꾸 궁금한 것, 의심스러운 것이 많이 생겨서 너무나 답답하고 속상하다고 말이다.
이 학생의 이런 답답한 마음이 너무나 기특해 보여서 이렇게 답을 했었다.
“내가 의심한다고 해서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신단다. 내가 의심한다고 해서 진리가 변하지 않는단다. 실컷 의심해도 된다. 그 의심을 통하여 더 정결한 믿음을 갖게 될 거야.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믿음만은 변치 말아라.”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 믿음을 의심한다. 의심하면 어떠랴? 의심한다고 하나님이 떠나시겠는가? 의심한다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겠는가?
의심하던 도마를 주님께서 친히 만나주셨던 것처럼, 의심하는 우리의 삶 속에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시는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이사야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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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