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교회)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날까 말까를 선택한다. 세수를 먼저 할지 양치를 먼저 할지 선택하고, 무슨 옷을 입고 나갈지 선택한다. 준비를 끝내고 운전석에 앉으면 이제는 어떤 길을 타야 할지 선택한다.
“프리웨이를 타면 막힐 수도 있어, 아니야, 그래도 로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프리웨이가 낫지”하고 고민한다. 막상 이 길을 타든 저 길을 타든 걸리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는데도 이런 선택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선택의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훨씬 더 중차대한 선택도 많이 있다. 한국에서 살아야 할까, 아니면 미국에서 살아야 할까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도 했고, 회사를 다녀야 할지, 아니면 내가 비즈니스를 직접 운영할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도 했다. 그리고 젊은이들 중에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선택이 일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약 30년 전에 ‘인생극장’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선택의 순간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결심했어’ 하고 말하고는 각각의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그래 결심했어’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인생의 선택은 어렵다.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선택의 연속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우리는 예수를 선택한 사람들이지만, 예수를 선택했다고 하여 신앙생활에 선택의 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선택해야 할 가짓수가 더 많아지고 더 복잡해진다. 믿지 않는 사람이야 이것이 내게 이익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선택하고, 기껏해야 이것이 선한 행동인가 아닌가 정도가 선택의 기준이 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내 신앙의 양심에 위배되는 일인가 아닌가’ 또는 ‘이 일을 예수께서 기뻐하실 것인가 아닌가’ 하는 등의 선택의 기준이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이 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하기에 좋은 기준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내가 손해보는 선택을 하자’이다. 내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기 보다는, 내가 손해보고 다른 이들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 선택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손해보는 선택을 해야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모두가 움켜쥐려고만 한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마저 주셨는데, 그 넘치는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 조금씩 손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스도인들의 손해 보는 선택으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따듯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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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