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6,25전쟁이 진행될 때다. 그 때 나는 만 네 살이었는데 벌써 철이 들었던 같다. 아주머니들이 화롯가에 모여 시국에 대한 근심어린 대화를 나눌 때 곁에서 엿듣곤 했다. 대화의 깊은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근심어린 표정을 통하여 국가의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치안대에게 끌려가신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리는 정황에서 우리 가정은 온통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남매를 데리고 계셨는데 밤에는 시골집 안 방문에 빛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담요를 쳤다. 한밤중에 깊은 잠을 자다가 낌새가 이상하여 눈을 뜨면 어머니는 창호지로 바른 창문 중앙에 손바닥만 하게 붙여놓은 작은 유리창을 통해 밖을 주시하고 계셨다. 혹 누가 밤에 찾아올까 하고 말이다.

그럴 때면 어린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나도 잠이 깨어 어머니와 함께 하곤 했다. 후일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아버지를 데려간 치안대가 아이들을 체포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하셨다.

추운 겨울인데 매일 밤을 이런 식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밤이 싫었다. 밝은 대낮에는 이런 두려움에 빠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칠흑 같은 밤이 빨리 물러가고 광명한 아침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 때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저 지난주에 밀라노에 한 주간 다녀왔다. 장로 장립식설교와 다른 교회 주일 설교를 하는 일 때문이었다. 그 주간을 지내자마자 모든 회합을 금지한다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특히 코로나가 발생한 마을은 롬바리디아 지방은 경찰들이 삼엄하게 통제를 하였다. 

마치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볼 곳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다양한 밀라노에서 집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것을 깊이 체득하게 되었다. 더 있다 가라는 아들 내외의 요구를 거절하고 목요일 내려오는 길은 마치 헤겔은 이미 콜레라에 걸려 죽었는데 쇼펜하워는 번창하는 콜레라를 피하여 베를린을 용케 빠져나왔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이미 밀라노 가까운 주유소는 통제하느라 막아버린 상태였다. 고속도로도 한산했다. 그 많은 차들이 어디를 갔는지 모르겠다. 로마에 내려오니 아직 로마에는 코로나 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데는 가지 말라고 하고, 또 동양인이 이곳저곳을 나다니는 것도 눈치 받을 일이어서 가능한 집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유투브의 뉴스를 수시로 보고 있다. 

지금처럼 유투브를 자주 보는 일은 전에 없는 일이다. 한밤중에 자다가 화장실에 갈 일이 있어 일어나면 그 잠깐 사이에 유투브를 보게 된다. 오늘은 환자의 수가 얼마나 증가되었나? 혹은 코로나 증가에 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나 하고 말이다. 마치도 전방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후방에서 수시로 확인하는 자처럼 말이다. 

건강한 사람이 타의에 의해 집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이웃과 교류하여야 하고 교류하기 위해 만나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물결이 넘실대는 시장을 찾아가고 카페를 마시기 위해 바에 가고 음식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도 드나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삶이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을 절제하고 멈춰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막상 실행해야 하니 답답하고 창살 없는 감옥의 삶을 사는 것 같다.

지금 이태리 전역은 비상시국이다. 모든 상점은 문을 닫고 오직 약국과 슈퍼, 그리고 병원만 문을 열도록 하고 있다. 법을 어기고 밖에 나갔다가 걸리면 큰 벌금과 더불어 형사 처벌된다. 

아름다운 계절인데 밖은 썰렁하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전염병 코로나, 이 병이 몰고 온 삶의 풍속도는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로마의 교민들 대부분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고 식당업과 그에 관계된 일에 관계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 이 부분이 올 스톱되었으니 당사자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싶다.

이런 정황에서 우리는 성경에 예언하신 말세에 하나님께서 보내실 재앙에 대해 상상해본다. 그 재앙(계16;1-11)은 훨씬 더 강력하고 두려운 것일 텐데 그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까?. 성도는 뭐니 뭐니 해도 오늘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마다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주님을 더욱 가까이 의지해야겠다 싶다.

코로나는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고,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달아야 한다 싶다. 우리가 현재 만난 코로나 바이러스는 앞으로 만나게 될 우주적 환란을 예측할 수 있겠다 싶다. 그 두려운 날을 말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준비된 자에게는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영적으로 준비된 자란 믿음으로 거듭난 자를 의미한다. 이런 재앙을 만날 때 성도는 모름지기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싶다.

locielo88@naver.com

 

03.2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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