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한인교회
오래전에 안디옥을 방문했다. 기독교적으로 유서 깊던 안디옥이 현재 이슬람으로 깊게 채색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의문이 일어난다. 안디옥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론테스 강물은 수많은 역사를 가슴에 품고 있으리라 싶다. 특히 지역 주민들의 영적 상실감에 공감하면서....
안디옥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예루살렘교회가 핍박을 통해 온 세상으로 흩어지게 되었을 때 첫 번째로 세워진 이방교회로 아주 모범된 교회이었다. 그 교회에서 위대한 전도자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함으로 온 세상을 복음으로 편만하게 했던 놀라운 교회다.
더구나 파송 받은 바울이 무시아에 복음을 전하려고 진력하던 중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진로를 바꾸어 빌립보로 가도록 역사했다(행16:9). 그 걸음을 토인비는 바울이 탄 배는 엄청난 문명을 싣고 구라파로 건너왔다고 했다. 고로 구라파를 복음화 함으로 무지했던 그 지역을 문명국가로 변화시켰다.
또한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를 대신하는 영적 리더의 면모를 보였던 교회이었다. 5세기까지 다섯 교회가 리더십을 지니고 있었다. 예루살렘교회, 알렉산드리아교회, 콘스탄티노플교회, 로마교회, 안디옥교회이었다. 이 다섯 교회의 감독들은 모두 동등했다.
특히 4세기에 안디옥교회의 주교는 저 유명한 크리소스톰이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설교를 잘하였기에 그를 가리켜 금구(금입)라는 별칭으로 불린 주교다. 동 로마의 황제 아르카디우스는 그를 콘스탄티노풀의 감독으로 초청하려고 할 때, 이 일을 비밀로 진행해야 했다. 이유는 드러내고 추진하면 안디옥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한 사람의 주교를 어느 지역에서 초청하고자 할 때 주님들의 폭동을 두려워해야 할 정도이었으니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알게 된다.
그런 안디옥이 어찌 이처럼 영적으로 처참하게 버림을 당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항상 진리 편에 섰고 신앙의 노선이 보수적이었던 교회이었다. 어떻게 이런 영적 지형을 유지했던 교회가 처절하게 무너지고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을 까 싶어진다.
6세기 동 로마의 유스티아누스(527-565)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 소피아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528년부터 533년까지 무려 5년 10개월 동안 매일 5만명의 노동자를 동원하여 청동원형 돔과 벽화, 그리고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름답고 화려한 교회당을 완공했다.
교회당이 완공되자,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고 선언했다. 그 교회당이야말로 동로마 전 국민들을 쥐어짜서 건설한 피와 땀이 서려있는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동 로마의 신앙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그 신앙의 좌소가 1453년에 오스만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 화려했던 소피아 성당의 돔 꼭대기에 장식된 십자가는 떼어지고 대신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로 바뀌었다. 그리고 성당 내부의 화려한 성경인물에 대한 모자이크나 그림들은 회반죽으로 덧칠되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화려하게 건축한 교회라 해도 진리에 어긋날 때 가차 없이 버린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 교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건물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사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존귀한 인생, 그러나 진리를 떠나게 될 때 가차 없이 버림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인식해야 한다. 안디옥교회는 이런 냉엄한 사실을 이 시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서있는 자리는 어딘가?
chiesadiroma@daum.net
07.20.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