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깨닫게 하신다. 베드로에게는 닭 울음소리를 통하여 자신의 영적 실존을 보게 하셨고, 어거스틴에게는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게 하셨다.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에게도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말틴 루터는 친구와 함께 부모님을 방문하고 돌아가던 중, 들에서 큰 벼락을 만났다. 그 벼락은 함께 길을 가던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큰 두려움을 느낀 루터는 성안나를 찾았고, 살려주시면 자신을 수도사로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그 때부터 개혁의 웅지는 시작되었다고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말한다.
지난 10월 초에 함께 유럽목회 연구원을 만들었던 친구 목사님이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주일의 설교 영상을 어느 분이 올려놓은 것을 들어보니 아주 패기가 넘치고 메시지에 힘이 있었다. 그 어디에도 죽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설교였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하나님 편에서는 예정된 것이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갑작스런 사건이었다.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싶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아니, 하나님을 평생 섬긴다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싶다. 그렇게도 우리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래서 정말 헛된 것, 그리고 무익한 것에 집착하고 또 사랑한다. 고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항상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여야 할까? 나는 주일날에 아내와 함께 예배를 인도하러 교회에 가는 어간에 고즈넉한 카페 집에 들어가 조반을 먹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마시는 카프치노는 더욱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이제 포기하기로 했다.
외국이라는 이유로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주일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부분을 이제는 고치기로 했다. 그것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겠지만 주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 주님께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질, 성공, 명예, 인기, 권력, 스펙일까? 그 어느 것도 아닐 것이다.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한 부분이 아닐까?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 이다"(시119:56). 그리고 요즈음에 눈에 들어온 성경 구절이 있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민15:4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이 거룩함을 좇는 일인데, 거룩함을 이루는 삶은 다른 게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나는 이런 부분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친구의 예기치 않는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서야 눈이 떠졌다고나 할까? 광대하신 하나님의 요구하심 가운데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즉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는가? 이런 부분에 더욱 집중하고 살아가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지난 많은 세월들을 살아오면서 회개해야 할 부분이 그 얼마나 많을까 싶다. 주여 긍휼히 여겨주소서! 이제부터라도 주님을 진정 순종하게 하소서. chiesadiroma@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