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우리는 온통 두려움이 팽배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두려움이 최고의 두려움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없어도 큰 문제가 없는데, 현대 문명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누리도록 하고 더욱 편리함을 추구하도록 유혹하고 있고, 현대인은 거기에 항복합니다. 그래서 그것 없이는 삶을 생각할 수 없는 정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현대인에게는 그만큼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옛날 연탄 한 장으로 하룻밤을 지내야 했던 시절에는 난방비에 대한 걱정이 없었습니다. 걱정이래야 혹시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을 까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걱정의 폭이 상상할 수 없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핸드폰으로 인해 한 달 지출해야하는 돈이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자동차가 없어도 교통이 너무나 편리한 세상입니다. 거미줄처럼 기획된 편리한 지하철, 그리고 이용할 버스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개인 자동차를 가져야 하는 현대인들입니다. 꼭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이웃이 소유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나도 가져야 한다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소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유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만큼 지출은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감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지출이 많아지니 그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부부가 벌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기업의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은 이런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가정은 삶이 너무나 힘들고 각박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주말이 되면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도란도란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즐거워해야 하는 데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밤낮으로 바쁘게 뛰어야 문화생활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혼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없을 지경입니다. 왜 세상은 이런 식으로 점점 흘러가게 될까요.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안식에 들어가는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 지라도 너희 중에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 까 두려워하라”(히4:4).
성도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안식(천국)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에 적을 둔 사람은 모두 성도요, 성도된 자는 맡아 놓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큰일 난다는 말입니다. 고로 성도된 자마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세상적은 두려움이 부정적 두려움이라면 신앙적 두려움은 긍정적 두려움 내지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천국에 입성하는 것은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문제는 그 어떤 세상일로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세상일 때문에 예배를 등한히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했다면 약속시간 며칠 전부터 준비할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과연 얼마나 준비하며 정성을 기우릴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진정 성도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어떠신지요? chiesadiroma@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