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목회자에게 평생 숙제는 설교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설교에 성도들이 은혜 받는 것을 보는 것처럼 더 큰 즐거움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안수를 받는 순간부터 숙명적으로 이 부분을 늘 고민하고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마치도 결혼한 새댁이 함께 사는 시부모님께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목회의 경력이 많아질수록 설교의 테크닉은 발전하는데 그것이 반드시 좋은 설교는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목회자는 또 고민하게 된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데 비해 성경이라는 텍스트는 이천년 동안 동일한 것이고 자신의 테두리를 철옹성처럼 지키고 그 것을 벗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는 성도들도 마찬가지고.... 성도는 본능적으로 항상 새롭고 산뜻한 것을 원하지만 동일한 성경을 성도들이 맛있게 풀어내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고로 간혹 유학경험이 있는 목회자가 새로운(?) 말을 했다가 치도곤을 당하는 경우도 있기에 설교자는 독특한 발상이 떠올랐다고 해도 그 부분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가끔 방문하는 교인들이 어느 교회 예배에 참석하였다가 아주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할 때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님이 부럽다. 그 목사님은 어떤 설교를 하기에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까 싶다. 물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믿지만 목사로서 그런 목사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자괴감도 들고.... 그래서 어느 날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다는 목사님 교회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분의 설교를 들어보았다. 3-40분 동안을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특별한 점이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물론 말 주변이 좋다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 중에 어떤 분은 말 주변도 없었지만.
이런 사실 앞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사람들은 은혜 받았다고 기뻐하고 그 분을 못 잊어하는데 정작 목사라는 자가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나의 감성과 마음을 우둔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에 은혜 받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것이야 말로 진솔하게 회개해야 할 부분이 아닐 까 싶다. 부활하신 주님은 더디 믿는 제자들을 책망하셨기 때문이다.
목사는 한 주일에 여러 편의 설교를 작성해야한다. 그리고 성경에 매여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해외에서 사역하는 목사들에게는 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다른 목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방문한 목사 부부를 데리고 이태리 북쪽의 아름다움 산을 갔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탄성이다. 그러나 나는 여러 번 보았기에 새로움이 없다. 바로 이런 식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내가 해결해야 할 분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철저한 회개가 아닐 까?
무디어진 심령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 민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심령이 될 때 말씀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음성으로 들려올 수 있다. 많은 경험은 익숙하게 하지만 그것은 타성에 젖게 하는 지름길도 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을 죽이는 독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주님, 내게 은혜를 회복하여 주소서. 그래서 감동 있는 설교도 하고 타인의 설교에 은혜 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