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를 긍정하는 담대한 믿음

- 기도, 몸, 언어, 게으름 -
전남수 목사

다들 코로나로 인해 삶이 예전보다 훨씬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 ‘크고 담대한 믿음이 필요한 세상이 도래했구나. 주여 더욱 힘을 주옵소서. 할렐루야!’ 그러나 현실에 천착하는 사람들은 별로 신앙인의 언어에 동의하지 않는다. 삶은 삶이고, 믿음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제를 영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보편의 상식으로 다루려다 보니, 문제는 여전하고 삶은 한없이 지치게 되는 것이다.

 

삶의 큰 문제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제일 큰 문제는 무엇인가? 흔히 돈 문제를 제일 큰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금 더 담대한 믿음으로 바라보면 이것도 별 일 아니다. 세상에는 잘 사는 사람이 많고 잘난 사람도 많은 것 같은 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재벌들도 한순간에 좇겨나서 빈털터리가 되거나 당대 한국 최고의 부자라는 사람도 지금 영어의 몸이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반면, 지금도 하루에 일 불, 한 달에 삼십 불씩만 가지고도 사는 사람이 지구상에 십삼억이 된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왜 나만 가난하고 힘들게 고생하냐고 낙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무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일까? 거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또 사람들은 늘 먹고살기 힘들어서 죽겠다고 한다. 인간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선배 목사님 한 분은, 먹고사는 문제는 견디면 되는 것 아니냐며 별일 아니라고 한다. 이유인즉 사랑하는 자식이 이단에 빠져 죽고 사는 신앙 사상의 문제에 봉착해보니 해결방법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울 수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부모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것이다. 어떤 장로님의 아들은 신학교를 갔는데, 동성애에 대한 이상한 생각들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분은 자녀가 공부를 아주 잘해서 아이비리그에 속한 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어느 날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고백하고, 이에 대한 부모의 격한 반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먹고사는 돈 문제가 중요하지만 이런 문제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리의 어려움 또한 결국은 상대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긍정과 부정

 

시험 점수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자살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애들을 보면, 전교 1-2등 하다가 3-4등 하게 되어 죽겠다고 덤비는 애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 못하는 애들은 대부분이 긍정적이다. 자신들 때문에 일등 하는 애가 빛이 날 수 있지 않느냐? 고 말한다. 부모가 들으면 기가 막힐 일이지만 공부 스트레스로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 아이이기에 나름 귀여울 따름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몇 명이 될까? 외려,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지 않은가? 

얼굴 가지고 속상해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선풍기 아줌마처럼 스스로 얼굴에 이물질을 집어넣을 정도의 중독에 빠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과연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과연 몇 사람이 자기 마음에 만족할 만한 얼굴을 가졌다고 자부할까? 대체로 착각하는 것이지 진짜로 잘난 사람은 얼마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 지으신 세상에서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얼굴, 바로 이 얼굴이 하나님의 걸작품 아니겠는가?

 

 

 

만사를 긍정하는 믿음

 

몇 가지 문제를 예시했지만, 결국에는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의 담대함이 너무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가지고, 어려운 일들 앞에서 두려움을 가진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럴수록 더욱 믿음의 담대함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 의인은, 그 삶의 원리도 오직 믿음으로 의인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야 함을 말씀하는 것이다. 

 

담대한 기도 

 

이민자들의 삶에서, 믿음의 담대함을 깨뜨리는 몇 가지 대표적인 예들이 있다.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은 영적으로 믿음을 잃고 낙심할 때이다. 기도하고 구하였는데, 하나님이 묵묵부답하신다는 것이다. 원망과 불평이 감사의 문을 막아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생각해야 한다. 교회를 다니고 기도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도하며 교회를 열심히 나오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은 참 아름답고 귀하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도 우리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실패라고 할 일들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더 큰 승리의 주인공을 만드시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구멍가게가 망해야 큰 가게 주실 것인데, 왜 자꾸만 구멍가게 망한 것만 두고 원망하고 있는가? 지금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살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체력은 영력 

 

두 번째는 몸의 어려움이다. 몸이 약해지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만사가 귀찮아지면 믿음 생활이 희미해지는 것을 본다. 체력은 영력이다. 체력이 약해지면 영력도 줄어든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몸이 약하다고 해서 못할게 뭐가 있는가? 인도의 간디를 생각해보라. 인도를 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 금식 투쟁을 하고 단식 투쟁으로 인도의 간디는 인도의 아버지가 됐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그 약한 몸이 인도를 어떻게 구원해 낼 수 있었겠는가? 기독교와 맞지 않는 예화지만, 몸이 약하다고 일을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몸이 약하다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믿음을 잃은 것이다.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교회 나올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온 성도가 은혜를 받고 교회가 기도하며 더욱 큰 은혜가 넘치게 된다. 

 

긍정의 언어

 

세 번째는 언어의 문제이다. 칼과 창으로 사람을 해하지 않는 이 시대는 말이 그 역할을 한다. 특별히 부정적이고 소망 없는 말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상대방의 영혼을 찢어놓는다. 긍정의 말로 염색되기보다 부정적인 염색이 훨씬 더 강해진다. 우리가 죄인이어서 그렇다. 악하고 나쁜 말은, 좋은 말보다 감염이 몇 배나 더 강하다. 긍정은 한 번 두 번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부정적인 것은 한 번만 해도 세 배를 감염시킨다. 그래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도 믿음을 잃지만, 다른 사람도 함께 어려움에 쉽게 빠지게 한다.

 

신앙의 열심 

 

네 번째는 게으름의 문제이다. 은혜는 사람으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한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는 순간 게을러진다. 그래서 성경은 게으름을 악한 것이라고 했다.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식어지면 뒤로 물러난 것이요, 그렇게 되면 믿음을 상실한 자리에 빠지게 된다. 신앙생활은 쉬는 게 없다. 휴가라는 게 없다. 놀러 가도 신앙생활, 일을 해도 신앙생활, 여행을 가도 신앙생활, 그래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을 믿고 신앙에 열심을 내어도 되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온전한 승리의 영광

 

이러한 몇 가지 예뿐이겠는가? 훨씬 더 많은 일이 이 시대에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고자 찾아온다. 특별히 지금은 코로나가 겹친 종말의 시대이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힘들다 어렵다 죽겠다 못 살겠다며 아우성친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본질적인 믿음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삶에 어려움이 생기고 문제가 있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어떤 다른 것을 구하기보다 믿음을 구하고, 그 어떤 성공보다도 자신의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마침내 온전한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davidnjeon@yahoo.com 

 

09.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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