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과 단잠
복잡한 세상 가운데서 한결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라는 근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였다.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교회를 다니려 합니다’ 그렇게 답을 하였다. 신앙생활에 대해 이런 목적과 해답을 가진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대답을 들으면서 한편 인생의 연약함이 느껴졌다. 태중에서부터 지음 받고 함께 붙어 살아온 자기 마음 하나조차 제어하기 어려운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세가 칠팔십을 지나셔서 인생에 일체의 법을 깨달으셨을 법한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목사님, 예수 믿으면 걱정 근심 없이, 마음 편하게 잠도 잘잘 수 있고.. 그렇죠?’ 그저 마음에 평화를 주는 통로로, 잠 한번 달게 자봤으면 하는 마음에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마음 하나 제대로 먹기 어려운 게 인생임을 깨닫게 된다. 나 자신도 아직 젊지만 마음과 딴판으로 말하고, 화내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그런 일들을 되새겨 보면 처음 예수를 믿는 저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하나 잘 다스리는 것’ 그것도 나름 중요한 신앙의 목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히 이민생활의 고단한 인생의 바다에서 얼마나 ‘평안과 단잠’이 갈급했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면 아스라한 마음이 든다. 그러한 대답에 ‘물론, 예수 잘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가운데, 평강으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더불어 우리 하나님은 그저 마음하나 다스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강수를 마시고 영혼을 풍성하고 만족하게 하시는 분임을 말씀드렸다. 신앙생활에 마음의 평안하고, 단잠 자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라는 나무에 달린 여러 가지 중요한 열매중의 하나일 뿐이지 신앙생활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열매와 뿌리(根本)
농부가 열매를 구하고 찾지만 지혜로운 농부는 그런 좋은 열매를 맺을 만한 나무의 줄기 가지를 튼튼하게 하는 뿌리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애를 쓴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탐스럽고 좋은 열매를 얻고자 뿌리에 좋은 영양분이 될 만한 거름을 공급하고 땅을 기경하며 열매를 맺을 힘을 북돋아준다. 그렇게 뿌리가 좋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깊이 땅에 뿌리박히면 좋고 튼실한 열매는 절로 맺히게 되어 있다. 이때, 열매를 가리켜 보여지는 것을 현상이라 한다면, 나무를 존재하게 만드는 근본이 되는 뿌리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열매를 드러내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참되고 지혜로운 농부는 열매가 아닌 뿌리에 관심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신앙생활, 교회생활, 세상에서의 삶, 더 나아가 목회의 본질까지, 뿌리와 근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모든 것의 근본은 무엇인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시다. 한분 하나님 외에는, 창조세계 안에서 인생이 의지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 불변의 본질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께 삶의 뿌리를 잇대어 살아가는 인생은 약속하신 은혜와 평강, 모든 좋은 열매를 맺고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삶이 연약해서, 풍랑이는 바다위에 점과 같은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은 모습이어도, 근본 하나님이 그를 붙잡아주시면, 그의 인생은 마침내 소원의 항구에 넉넉히 이기며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평탄한 세상을 살고 원하고픈 모든 열매를 다 얻는 것 같아도 그 인생의 뿌리가 하나님께 잇대어 있지 못하면, 거센 비바람에 뿌리채 뽑혀 길가에 드러누운 나무들 모양 비참한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자식출세에 무병장수할 것 같은 건강을 얻었으면, 풍성한 열매로 만족하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행복한 인생일까? 그렇지 않다. 복 받은 사람이라고 덕담 정도는 들을지 몰라도 그저 유한한 열매를 소유하고 있음에 불과한 형국이다. 중요한 것은 삶을 판단하기에 앞서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인생의 근본뿌리가 어디에 잇대어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뿌리가 근본 진액에 잇대어 있지 않으면 그 열매들의 풍성함은 그저 잠시 잠깐의 즐거움일 뿐이기 때문이다.
험악한 세상, 유한한 인생
야곱의 인생을 보라. 젊은 시절 그는 원하는 대로 가지고 싶은 만큼 다 가진 인생을 살았다.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경쟁적인 성향을 가졌고, 형 에서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넘겨받았다. 아버지를 속이며 축복권을 취하였다. 원하는 한 여인을 얻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 결과 아내가 네 명이나 되었고 아들도 열둘을 가진 가장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은혜를 끼친 삼촌과의 경쟁에 이기면서, 재산도 넉넉하게 차고 넘치게 되었다. 겉으로는 보면 당연히 행복해야 마땅한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네 명의 여자가 한 집안에서 뒤섞여있음은 결코 평안을 주지 못하였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아도 사라 하갈 둘만 있어도 콩가루 가정이 되어 배다른 형제가 내어쫓김을 당하고 여인들 간의 거친 혈투가 이어졌는데, 야곱의 집안은 어떠했겠는가?
결국, 딸은 세상과 어울려 강간을 당하여 집안은 몰살의 위기를 맞이하였고 아들들은 서로 간에 시기와 질투로 편을 나뉘어 서로를 해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가? 열매를 구하기만 했지, 그 뿌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당연한 결과였다. 삶의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잇대어 있지 않은 모든 것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한순간에 허망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훗날 그가 고백하는 ‘험악한 세월’로 표현되어지는 자기 고백이 이것을 표방한다 하겠다.
야곱의 회복은 언제 나타나는가? 세겜의 고통스런 밤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비로소 회복이 시작되었다. 벧엘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이다. 여전히 자식들 간의 갈등과 흉년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그의 삶을 흔들어 놓았음에도 그는 다시금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림으로, 흔들림 없이 삶의 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했던 것이다. 삶에 대해서도 겸손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회복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요셉이라는 잃어버린 아들을 통한 노년의 복을 보았으며, 속썩이던 아들들 모두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이루는 인물들이 되었다. 가정의 영적가장인 아버지의 든든한 신앙의 뿌리내림이 줄기 가지와 같은 자녀들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핵심과 본질
한 사람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뿌리내리는 모습을 ‘예배’가운데 확인하게 된다. 야곱의 인생에 벧엘, 하나님의 집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하나님과 자기 영혼이 연결됨을 느꼈고, 마침내 죄악가운데 요동치는, 연못위의 부초같이 바람 따라 움직이던 인생의 모습이 제대로 정형미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생의 뿌리내릴 영원한 반석이시라면, 예배는 그렇게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자라가도록 하는 회복의 통로이며, 도구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진액이 흘러나온다. 마치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뿌리로 물과 영양을 흡수하므로 잎이 푸르고 열매가 창대하듯이 인생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회복과 축복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이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머리를 쥐어짜서 만들어낸 종교이야기가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친히 사람을 위해 세우신 법이요 그가 정하신 본질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본질은 돌고 돌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그것이 나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본질이 하나님이시라면,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신앙생활의 온전함을 맛보고, 마침내 인생의 본(根本)이 되시는 하나님께 잇대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열매를 원한다. 그러나 근본과 본질을 찾고 구하지 못하는 인생은 결국 공허(Nothing)한 인생을 살아갈 따름이다.
보이는 교회에 뿌리내림
회복의 도구인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뿌리를 내림으로 열매의 풍성함을 맛보듯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주의 전에 잘 심기워진 백향목처럼, 눈에 보이는 교회생활에 풍성한 은혜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도는 교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 성전에 모든 복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전에서 성도들이 만나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만나주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신앙생활은 반드시 교회 생활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면 어디에서도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인 중에는 교회 안이나 밖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하며, 그 결과 교회를 경홀히 여기고 교회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 마침내 복된 성도의 자리를 벗어나게 되는 것을 본다. 교회와 세상은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복된 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며, 주의 성전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자신뿐 아니라 자손들도 주의 전에 잘 심겨진 감람나무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교회, 아버지 집에 심기움
세상의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성도의 제일 소원은 아버지의 집에서 사랑과 쓰임을 받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전을 귀히 여기며, 성전을 사랑하며, 기쁨으로 성전에 나아와야 한다. 그리고 주의 성전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맡겨주시든지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성전생활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한가운데 항상 교회가 존재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들의 열매를 하나님이 책임져주실 것이다.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죽는 것이다. 주님과 교제하고 예배하며, 찬송하고 주의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삶이 형통하게 된다. 이곳이 교회다. 그래서 우리는 살기 위해서도 교회에 나아와야 한다. 그렇게 주님의 교회에 나오면, 모든 생명이 살아 역사하게 된다. 온갖 죄악과 저주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열매가 맺으며 형통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거친 이민생활 가운데 밤이 깊어도, 세상의 근심 걱정에 매여 마음에 원하는 단잠도 마음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면서도 좋은 열매, 성공의 열매를 거두어 보고자,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일한다.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의 삶의 근본, 뿌리는 무엇이며, 나는 어디에 잇대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최고의 답이 있다. 예배를 통해, 교회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께 잇대어 살아감으로 최고의 열매와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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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