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라스에서 이민목회 20년 사역을 잘 감당하고, 한국의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훌륭하게 목회를 감당하시는 최병락 목사님이 최근 미국을 방문하여 ‘미래목회’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다가오는 미래교회를 생각하며, 새롭게 목회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목회를 돌아보는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중의 하나는 코로나 이후 미래의 한국교회를 예측하는 내용이었다. 조사기관의 통계를 인용하며, 코로나가 진정된 이후에도 이전 출석교인의 30%만 돌아올지 모른다는 연구보고를 전해준 것이었다.
실제로, 인터넷 예배의 활성화로 인한 주일성수 개념의 파괴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노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더불어, 이민교회나 한국교회의 상황이 많은 부분 비슷한 흐름을 나타낸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다가오는 목회적 환경들로 인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러한 때에, 세미나를 통해 듣고 나눈 내용들을 중심으로, 함께 고민하는 가운데 작은 대안이라도 찾아보고 자 하는 마음에 몇 가지 의견들을 정리해본다.
1. 기준을 분명히-교회중심
어떤 위기,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장 먼저 점검할 것은 ‘기준, Goal’에 대한 문제이다. 목회와 신앙에 있어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뜻에 합당한 목회 철학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름 부어 세운 종들에게는 주님의 변함없는 요구하심이 있다. 코로나 환경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교회중심의 신앙과 목회에 대해 “기준!” 하고 나팔을 선명하게 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힘 있고 담대하게 외쳐야 한다. ‘교회로 나아오라, 교회에서 만나자, 교회에서 함께 주의 영광을 보자. 교회는 주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그렇게 담대하게 외칠 때, 양들은 두려움 속에서 울다가도 따라올 것이다.
물론,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나팔을 불어도 안 따라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괜찮다. 나팔을 불어도 따라올지, 아니면 제 갈 길을 갈런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목자가 나팔을 불지 않으면 양들이 따라올 가능성조차 전무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께 결과를 맡기고, 힘차게 교회로 오라고, “교회에서 최고의 방역 속에 최선의 예배”를 함께 드리자고 나팔을 부는 것이다. 환경의 문제로 이 부분이 선명하지 못하다면, 직무유기의 죄를 범하는 목자로 판단 받을 런지 모를 일이다.
2. Reaching In–한걸음 더
교회를 기대하도록 사역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교회중심의 신앙생활을 강조할 뿐 아니라 교회가 성도들의 귀환(?)을 준비하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방콕, 집콕하는 성도들이 많다. 그들이 교회를 궁금해 하고 보고 싶은 곳으로 여겨지도록 조금의 변화라도 추구할 것을 권한다. 한마디로, 교회 보수공사라도 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카페공사, 교육관 개보수 작업, 야외쉼터, 게시판을 바꾸거나 페인트 작업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이 다니던 교회를 궁금해 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계획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도무지 할 일이 없다면 교회 배너디자인이라도 바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교회 안의 사람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한 걸음이라도 더 교회 앞으로 나아오도록 애를 써야 한다.
초창기보다 많이 잠잠해졌지만, 향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주일 현장예배와 가정예배는 함께 유지해야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제한된 상황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걸음이라도 더 교회 앞으로 성도들을 초청할 길이 없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일이면 당연히 교회를 향해 가듯이 주일에 집에서 영상으로 예배드림보다 아이들 복장을 챙겨서 차를 몰고 교회로 와서 교회 파킹장에서 영상으로 주차장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이다. 집이나, 주차장이나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뭘 모르는 말이다.
주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주님의 날이다. 그러므로 주일에 집에서 방콕예배를 드림보다, 비록 주차장이라 하여도 주님의 집 뜰에서 예배드림이 신앙교육이나 예배의 은혜면에 있어서 그 내용이 달라진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라고 할 때 주님은 과연 무엇을 더 기뻐하시겠는가? 할 수만 있으면 한걸음이라도 더 주의 교회로 가까이 가는 이들을 주님께서 더 기뻐하시고 복 주시지 않겠는가?
3. Reaching Out–30%
다음으로, 코로나 이후 교회 불출석을 말하는 30%의 성도들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수치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교회마다 잠재적인 신앙낙오자(?)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크다. 대안은 무엇인가? 대안이란 우리 쪽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주님의 불쌍히 여겨주심 외에는 없다.
최선의 노력이란 예상되는 일들에 대해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사역을 말하는 것이다. 걱정하는 단계는 아직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불신영혼에게도 찾아갈 것인데, 기존의 신자가 코로나염병에 그 연약함이 노출되어 있다고 할 때 갑절의 노력을 하는 것이 합당한 자세일 것이다. 집토끼(?) 성도들이 길 잃어버리지 않을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인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다. 간단한 카메라와 열악한 경우에는 전화기 카메라 몇 대를 사용해도 되는 미니 교회방송국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편집기술은 유튜브 영상에서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 방송국의 이름으로, 성도들의 삶을 취재하거나 간증스토리를 발표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현장예배가운데서 만나지 못하지만 영상을 통해 그들과 그들의 생업의 현장, 기도의 제목들이 소개가 된다면 훨씬 더 빠르고 간단한 방법으로 교회 앞에 자신을 노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작은 연결선들이 저들과 교회의 신앙의 끈이 되고 훗날 현장예배가 회복되는 그날에 어색하지 않을 반가운 상봉을 이루게 될 것이다.
4. 소금과 등불의 공유
한국교회나 이민교회, 모두 보수적인 신앙의 형태가 주를 이룬다. 보수적인 신앙의 색채를 가진 이들은 보면 대개 말씀중심의 삶을 살면서 점잖고 겸손한 신앙의 행태를 많이 띈다. 많이 얌전하고 조심스러워하며 개인 경건생활을 강조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형태가 코로나시기를 지나는 한국에서는 방역의 문제와 더불어 상당한 오해를 가져온 원인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한국사회에 대해 기독교가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 교육과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방역과 예배드림이 충돌했을 때,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그 신앙의 가치를 헤아리지 못한 채 매몰차게 교회를 비난하고, 교회내부에서도 양 갈래로 견해가 나눠지는 것을 본 것이다.
비유하자면 그동안 대 사회적인 영역에서 소금처럼 소리 없이 녹아지는 봉사의 역할을 많이 하였는데, 이러한 사역의 좋은 면을 드러내는 일들을 통해 사회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약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영광을 위해 소문을 내고 사람 앞에 나팔을 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겠지만 선한 것은 전하고 알려서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동참하는 일이 나타나게 된다면 이것은 귀한 것이라 여겨진다. 미담이 악담을 이기는 원리처럼 코로나시기에 성도들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는 악한 일들에 대해 계속 좋은 간증과 사역들을 소개하고 홍보하며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본 교회의 경우에는 전체교우와 구역별, 성경공부 조별, 리더팀 등의 다양한 단톡방을 통해서, 교회 홍보담당관을 정해 댓글이 꼬리를 물지 않는 범위에서 교회가 행하는 선한 사역을 성도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더불어, 격주로 행해지는 정기적인 도시락으로 찾아가는 오병이어의 사역이나 국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에 대해서 10의 1을 한번 더 헌금하도록 하여 어려운 분들에게 흘려보내는 일에 사용하는 일 등을 잘 홍보함으로써 어려운 환경에서도 교회가 감당하는 선한 일에 함께 기도와 물질로 동참할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과 교회의 연결 끈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5. 불량사상과 매체주의
많은 사람들의 손바닥안의 작은 전화기를 통해 진지한 생각의 생각을 생략한 채 유튜브를 중심한 여러 매체들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본다. 대통령 선거관련, 백신과 음모론 등등 굉장히 다양한 이슈에 대해 스크린이 직접 노출되는 경우를 본다. 굉장한 우려를 가지게 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어느 신학자는 중세시대 교회로부터의 신앙의 자유와 오늘날 코로나 환경 속에서 교회를 출입할 수 없는 환경을 연결해서 ‘교회라는 건물에 성도들의 신앙이 갇히지 말도록 권고’하는 책을 내었다. 교회는 건물이지만 성전이다. 우리 몸이 그냥 몸이지만 성령이 거하므로 성전이 되는 것과 같다. 교회는 외양이 건물이다. 언제라도 부수고 새로 지을 수 있는 물체이다. 그러나 그곳이 교회가 되고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그곳은 거룩한 구별된 장소로서의 성전이 아니겠는가?
예측컨대 많은 가나안 성도들이 열광하며 자신들의 교회밖 신앙생활의 근거로 삼을 것 같다. 학문이라 하여도 가나안 성도들이 속출하는 시대에 굳이 그렇게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상을 펼칠 이유가 있었을까 생각된다. 참 해롭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받는 은퇴목사가 대표적인 기독교방송에서 ‘코로나라는 대포로 교회를 박살내었다’는 정신없는 이야기를 방송국 프로그램을 통해 뱉어낸 것이다. ‘성과 같은 교회에 하나님께서 코로나 대포를 쏘아줌으로 성도들을 흩어버리고 영상예배와 같은 특별한 은혜의 도구를 허락하셔서 오히려 회복을 맛본다’는 엉터리 이야기였다.
기존 교회의 전통적인 현장예배를 대포로 폭파시키듯 했다는 그의 언행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불법한 일임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시대와 환경을 떠나 당신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주의 전으로 모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몸 된 교회를 향해 코로나 대포를 쏘시겠는가?
멈추지 말고 일하라
어떤 경우에도 교회는 코로나에 멈춰 서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시기에도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일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께서 교회와 사역자에게도 동일하게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실제 일하는 교회는 이런 시기에 교회건축까지 준비하며 일하는 것을 본다. 교회는 계속해서 멈추어 있지 않고 일해야 한다. 그리하여 코로나를 넘어서는 역동적인 그 힘으로, 코로나 이후에 후회와 탄식과 핑계와 침체가 아닌, 힘 있는 간증을 기록하는 복 있는 교회로 주님 앞에 세워져야 할 것이다.
로로나 이후의 교회와 신앙, 목회적 현실에 대한 많은 염려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걱정하고 있는 단계는 아직은 뭔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찬양을 부르며 막연히 기다리기에는 이 시대가 너무 교묘하고 악하게 교회를 위협한다. 포로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본향 예루살렘을 사모하듯이 이 극한 염병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자신과 가정과 자녀들은 더욱 잘 영적으로 무장되어 주의 몸 된 교회로 돌아갈 것을 사모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가운데 지나야 할 것이다. 참된 성도의 마음은 항상 주의 전에 머물러 있다.
davidnjeon@yahoo.com
03.2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