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 세상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 친구 류정길, 기도와 변혁
전남수 목사

역사의 두 수레바퀴 

 

역사는 History이다. 그분의(His) 이야기(Story)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역사의 주인공은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인간의 역사도 구분된다. BC와 AD로 인류사를 확연하게 구분하는 것에 큰 이의가 없는 것만 보아도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은 정말 살아있는 역사의 한 부분임이 명백하다. 부모가 여차히 나쁘게 대하면 부모의 DNA를 확인하자는 것이 인생의 악함인데, 정말 참된 진리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가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와 세상의 역사가 함께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그런 역사가 구체화 된 최고의 사건이 예수님의 탄생기사이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영을 내려 세금과 병역을 위한 아주 사사로운 세상 목적을 위해 호적조사를 명령했다. 이 부분을 성경은 ‘그 때에’(에겐에토 데)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언되었던 때가 성취되었음을 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구스도 황제는 단순히 행정적인 이유로 단순한 세상속의 history에 불과한 일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은 이를 도구로 하나님 당신의 His Story를 시작하신 것이다. 

‘크로노스’라는 일상의 평범하고 반복되게 흘러가는 시간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섭리 속에 간섭하셔서 특별한 의미가 드러나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개입하여 당신의 일을 이루어가신 것이다. 이처럼 아주 사소하고,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뚫고 들어와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다. 그래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충성을 다한다.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한다. 일상의 크로노스를 뚫고, 카이로스로 개입하고 간섭하여 찾아오시는 주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이다.

 

32년전 친구와의 추억

 

지난해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새해 첫날 새벽에 목사가 된 옛날 친구와 오랜 시간 전화통화를 하며 즐거운 추억의 시간을 보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32년 만에 전화로 첫 대화를 한 것이다. 친한 목사님이 한국으로 임지를 옮긴 후, 다니엘 특새에 간증한 것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가 비슷한 이름과 얼굴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결을 했던 것이다. 대학 동기였던 친구였다. 나는 대학을 내리 4년 마치고 간부로 군생활을 시작했고, 친구는 재학 중 군대를 갔었는데 그동안 여러 사정들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대학을 들어갔던 때는 시국이 굉장히 어수선했다. 전직 대통령부부를 구속하라는 것에서 광주항쟁의 진실들이 대학 내에 그대로 유포되던 때였다. 이곳저곳에서 민주화 운동의 연결선에서 사람이 스스로 죽기도 하고, 시위로 인해 정상적인 수업과 시험을 거의 볼 수 없던 때였다. 동기생이 30명이었는데, 모두가 수업과 시험을 거부할 때, 시험장에 들어갔던 동기생은 다른 이들에게는 공적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한마디로 수업시간에 정상적으로 들어가서 앉아있는 것 자체가 굉장한 압박이 느껴지던 시기였다. 필자는 고교 선배의 영향으로 신입생 때부터 일찍 단대 학보사의 기자생활을 하였기에 이를 더 가까이 직면해볼 수 있었다. 

그때 오늘 소개하는 친구에 대한 기억은 키가 크고 얼굴이 까맣고 바짝 마른 몸에 항상 잘 웃던 선한 모습이었다. 당시 동기생이 30명 정도이고 그중에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목회를 하기 위한 과정으로 왔었기에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든 저들 속에는 신앙과 현실사이의 고민이 깊었었다. 그러한 때에 본인은 비록 학보사에 있으면서도 교단 배경과 교회 분위기의 영향 탓에 그리스도인이 술 담배나 폭력적인 시위문화에 직접 가담하는 데 대해서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이론에 동의를 하고 동기와 선후배들을 사랑하고 좋아했지만 나 자신이 본래부터 가고자 한 길과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나는 목사 되기 위해 왔노라하면서 이미 선언을 한 탓에 주의한 구석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기억을 모아보면 이 친구는 목사가 되고자 왔노라 선언하던 나 같은 부류와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후에 친구가 공적인 방송에서 간증하며 말했듯이 술 담배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전적인 나의 기억에 담긴 것이지만 술 담배를 하는 여부와 상관없이 이 친구는 굉장히 순수하고 착하며 누군가 어려운 부탁이나 요청을 하면 쉽게 자신보다 다른 이들을 먼저 돌아보는 손해 보기 좋아하는 착한 학생으로 기억이 된다. 

나의 기억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나는 한 학기 과정을 빨리 마치고 기도원에 들어가 대학원 준비를 했고 후에 대학원입학 후에는 다시 군대를 가야했기에 거기까지가 이 친구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고 그 후 그 바쁜 한국의 신대원 M.Div 생활과 강도사 사역, 그 후 미국에 와서 20년을 지났으니 정말 기억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 당연했는지 모른다. 하물며 이민 목회 20년이라면 뭘 더 물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의 역사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그 이후의 시간들을 어느 정도 구성할 수 있었다. 재학 중에 군대를 갔던 친구는 제대 후 당시 선배 중에 목사님 아들로 우리 학과를 시위의 전면에 이끌고 있던 형을 따라 민중신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겸하여 운동권에도 열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파출소를 습격하던 사건에 가담했다가 백골단에게 현장에서 잡혀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구속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교도소에 있으면서 그 어렵고 힘들고 고독한 때에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다고 한다. 장로님, 권사님이신 부모님의 기도의 빚이기도 하겠지만 한달 만에 출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만난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위해 기도원을 찾아갔고, 거기서 주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 음성은 신학교를 가라는 말씀은 아니었고, 모든 것을 순종해서 고아원의 중고등학생을 돌보는 선생님으로 먼저 영혼을 섬기는 일에 헌신토록 했다는 것이다. 정말 기쁨으로 그 일을 섬기면서 마침내 주님의 인도를 체험하고 신학교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역시 빈틈이 없으심을 본다. 후에 그가 청년사역을 힘 있게 감당하는 배경에도 이런 준비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제대로 믿으면 정말 주안에서 우리 인생의 조각들은 어느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주도를 위한 사역

 

그렇게 신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사역을 하던 중 제주도 영락교회 청년부 사역자로 청빙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제주도에 대한 비전을 두고 먼저 기도하도록 자신을 이끄시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고자 하시는데 왜 너는 가만히 있기만 하느냐는 책망과 함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제주도를 국제선교도시’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청년들과 열정을 가지고 제주도를 통째로 주님 앞에 드릴 듯이 열정을 다해 사역을 감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그 제주도에 두지 않으시고 이제 또 다른 부르심을 좇아 서울의 두레교회로 가게하시더라는 것이다. 분명히 제주도를 위한 기도였는데, 자신을 왜 옮기시는 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일에 잠잠히 주의 일에 순종 혹은 복종하며 가다보면 주의 뜻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참으로 인내할 수만 있다면 절로 그 때가 드러나는 것이다. 제주도에서의 부교역자로서의 8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마침내 다시 제주에서의 부르심이 있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가장 처음 세워진 어머니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제주 성안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게 된 것이다. 현재도 본 교회에서 제주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비전가운데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기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8년 전 청년들과 제주도를 향한 그 뜨거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제주도를 변화시키고자 기도의 깃발을 들었던 한사람을 제주도의 원조교회에 담임목사님으로 심어주신 것이었다.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화염병을 들었던 열혈청년을 그렇게 변화시키셔서 가장 아름답고 복되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선하신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새해 1월 1일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32년 전에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가 이러했다. 몸에 전율이 일어나면서 거의 실물예화를 통해서 하나님이 새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런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장구하고 사적인 것 같은 친구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이유이다. 

세상을 이길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사람들은 옳은 생각, 옳은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자체가 옳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진보적이거나 좌파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얼마나 옳은 말만을 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머무는 곳을 보면 과거 학생 때의 경험이나 현재적 사회현실을 보아도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것을 본다. 

생각은 옳은 데 그들의 그 옳음이 교만이 되어 그들이 가진 자세와 태도, 다시 말하면 분란과 분열적인 행태를 늘 가져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세련된 좌파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보여주는 진보적 좌파들의 행태를 볼 때도, 타락의 정도는 오히려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보다 더 할 수 있음도 짐작해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저들이 가진 당파적 관점의 어떤 경향성보다 인간이 원죄인(原罪人)이라는 사실에 대한 부동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오직 그분에게 답이 있다

 

인생의 모든 일은 죄인됨의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말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하는가? 가장먼저 세상을 향한 외침 앞에, 세상을 변혁시킬 힘의 원천이 나에게 없음을 먼저 고백해야 한다. 오직, 그분에게 답이 있다. 그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그가 현실의 크로노스적인 세계에 간섭하시도록 해야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말씀을 듣고 주신 비전에 가슴 뜨거워하며, 무엇보다 기도의 무릎을 먼저 꿇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 세상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아니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될 것이다.’ 친구, 류정길.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하였는데,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밤과 낮이 다른 시간을 지날지라도 멋진 이름의 정길이가 있음으로 알칸사 리틀락의 한켠 목양실에 웅크려 있는 남수의 마음은 참 행복하다.  

 

davidnjeon@yahoo.com

0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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