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특별하지 않은 비전

- 교회, 예배, 열매
전남수 목사

하나님의 주권

 

연말을 지나면서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새로운 10년을 계획하는 일들이 보통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거룩한 비전의 소망이 장차 되어질 10년의 사역을 좌우한다고 할 때, 나의 마음에서 생겨나 만들려진 것이 아니라 명료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들이 지나치게 앞서다 보니 힘들고 피곤함들이 지나쳐 성탄의 시즌에 느껴야 될 당연한 은혜의 감각들도 많이 둔감해짐을 느꼈다. 

그때 주님께서 생각을 주셨다. 비전을 주신 것이 아니라 책망의 음성을 먼저 주셨다. ‘전 목사, 지금 너의 가는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고 하면 걱정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냥 쭉 가면 되지 않느냐. 이 길이 네 욕심으로 가는 길이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막힐 것이고,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뚫릴 것이 아니겠느냐? 막을 것은 막아주시고 열릴 것은 열릴 것이니, 평안하여라. 너는 내가 원하는 길에만 바르게 서 있어라!’ 이 말씀 앞에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었다. 그러고는 아주 단순 명료하게 10년의 목회주제를 확신가운데 정하게 되었다. 부족하지만 이때 받은 은혜를 조금 나누어보고자 한다. 

 

본질에서 다시 시작

 

새로운 10년의 비전이라고 해도 특별하지 않고, 아주 단순하게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의 주제를 다시 확정하는 수준의 내용이었다. 향후 2021-2030, 본 교회 10년의 중심주제는 ‘교회사랑, 예배회복, 일천강국’으로 길고 긴 생각의 매듭을 지어버렸다. 다시 본질에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표어이다. 본질이 무엇인가? 나무와 열매를 예로 들어 생각하면 나무가 본질이고 열매는 그 현상들이다. 본질이 좋아야 한다. 본질인 나무가 튼튼하고 좋다는 것은 무엇인가? 곧 그 나무의 뿌리와 줄기가지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질인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있으면, 픙성한 열매는 하나님의 당연한 소관이 된다. 농부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일하심은 항상 본질을 먼저 들여다보시기 원하신다. 그리고 그 본질에 맞게 준비가 잘 되었으면,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가장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실 그 의무를 성실히 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스스로 정하신 약속이며 법칙이다. 

교회와 사역, 신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들의 삶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당연한 책무에 대한 그 성실하심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나 교회사역 등,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본질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열매들은 우리에게 선한 것이다. ‘막힘과 열림’ 그 어떤 것이어도 모두가 주의 뜻 안에 있음을 온전히 고백하며 쉬 평안을 맛보게 될 것이다.

 

세상에 교회를 주신 목적

 

왜 10년 비전의 첫 화두가 교회와 예배인가? 2가지 질문에서 생각할 수 있다. 교회가 감당하는 사역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땅에 교회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다. 삶의 지경가운데 교회를 세우고, 왜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그렇게 고생하고 수고하며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는가? 일평생 단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해보지 않은 이들의 입술에 찬양의 고백과 외침이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 예배자를 세우므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그것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기쁨과 감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예배를 우선해야지 왜 교회 사랑이 우선인가? 사람이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예배를 배우고, 예배를 드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향해 나아오고, 교회를 좋아하고, 교회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예배자로서의 그의 신앙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몸을 움직여 눈에 보이는 교회를 향해 나아와야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성탄절 과자 하나에 이끌림을 받아 교회에 나아온 것이 성도로서 혹은 목회자로서 첫 출발점이었음을 고백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이처럼 예배드리는 장소로서의 교회가 중요하다. 구별된 장소에서 구별되게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신다.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올려 진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당신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심으로 열매를 넘치게 주실 것이다.   

 

예배의 질과 양

 

혹자는 굳이 그렇게 교회를 강조하고 예배를 강조해야만 하는가? 특별히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온라인 시대에 익숙함과 편리함속에 불쑥 불쑥 당연하듯 이야기를 꺼낸다. 더불어 꼭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예배를 많이 드린다고 사람이 변화되는가? 때가 있는 법이지. 그렇게 말하는 최근에 아주 많아지는 현상을 본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번 예배드림보다, 두 번 예배드림이, 두 번 보다 매일 드림이, 매일 새벽예배를 빠짐없이 주의 성전에서 드리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예배는 질도 중요하지만, 양이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 속에 주어지는 은혜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양이 쌓여야지 질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 아니겠는가? 더불어 그 어느 누군가가 예배의 질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은혜 받는다 생각되면 그 예배는 질 좋은 예배였는가? 그가 은혜 받았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대부분은 마음의 감동을 들리는 설교의 가장 중요한 기준에 두는데, 그 감동은 하나님의 것인가? 예배자의 자의적인 마음의 움직임인가? 최근,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영상설교를 유튜브 영상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설교를 일반영상과 같이 좋다 싫다를 판단하는 장치가 있음을 알고는, 이런 기능을 없애도록 하였다. 설교는 청자가 좋다 싫다를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가 창립 40년을 앞두고, 40년 역사에 가장 아름다운 성도 상(賞)을 시상하고자 했다. 그때 뽑힌 이는 다름 아닌, 개척멤버로서 40년을 한결 같이 교회 예배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라고 한다. 40년 역사를 은혜 있게 이끌어온 복된 교회의 모습이다.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항상 주의 전을 사랑해서, 그 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세상에 자랑꺼리가 많아도, 하나님 앞에 당당할 인생이 누가 있겠느냐고 늘 주님 전에서 울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최고의 예배자, 최고의 성도라고 여기는 교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부흥하는 교회를 가보면 ‘지킴이’라는 존재가 있다. 처음 시작은 세상에 별로 잘난 것이 없어서, 그저 교회에 자리만 지키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결 같이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던 그 사람, 그가 마침내 가정과 가문을 새롭게 일으키고, 목회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며, 교회를 부흥케 하는 존재가 마침내 되더라는 것이다. 이런 간증이 있는 교회가 바로 뿌리줄기가 튼튼한 교회, 열매가 풍성한 교회가 아니겠는가?

 

현상적인 열매의 풍성함 

 

교회중심, 예배중심의 줄기 가지 뿌리가 든든하게 세워진 그 나무라는 본질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는 놀라운 부흥의 열매를 허락해주실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며 주실 열매에 대해 10년 비전의 마지막 문구를 ‘일천강국(一千强國)’이라는 말로 이사야 60장 22절의 말씀을 품었다. 작은 것, ‘一. 하나’는 대단히 외롭고 작고 초라해 보이는 것임에도 그 하나를 통해서 마침내 ‘천(千)’이라는 열매를 주시며 마침내 힘세고 굳세며 든든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간다는 비전이다. 그렇게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듯이, Little Rock이라는 작은 조약돌 같은 도시에서도 다윗의 손에 들린 작은 돌멩이 같은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어도 주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이다. 한결 같이 주를 향한 비전과 소망을 품고,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당신의 성품을 따라 반드시 좋은 열매의 내려 주신다는 확신 때문이다. 실제, 그 축복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10년간 기도했던 제목이 ‘일천강국’의 비전이었다. 오직 주께서 주시는 열매이다. 

 

특별하지 않은 비전

 

이렇게 연말 시즌을 몸부림치며, 업앤다운의 롤러코스트를 타듯 머리가 아플 정도로 힘들어 하며 내어놓은 10년의 꿈과 비전이 바로 ‘교회사랑, 예배회복, 일천강국’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셨다는 생각에, 너무 감사해서 춤이라도 춰 보지만, 그런데 각론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 전혀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것이 바로 ‘교회와 목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본질은 항상 겉보기에는 폼 나고 좋아 보이는 게 아니지만, 열매로 분명한 답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로운 10년의 비전이 끝이 나니, 개척 후부터 신년마다 가지는 40일 특새의 주제도 쉽게 풀려짐을 본다. 신년에는 직분자 교육을 강화하고, 2세 교육에 집중하며, BS 리더들을 다시 재무장 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한참동안을 지난 20년 사역파일을 모두 뒤졌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서는 순간 너무 쉽게 풀려지는 것을 보았다. 새로운 십년을 시작하며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 교회와 성도의 본질이 예배라고 할 때, 장수가 전쟁터에 나아갈 때 하나님 앞에 먼저 제사 드리고 나아갔듯이 다시 10년을 그렇게 시작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역의 아이디어가 많아도, 예배로 나아가지 않으면 사울의 행실을 반복하는 헛농사 헛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년 40일 새벽특새 동안은 레위기를 통해 ‘5제사 7절기’의 말씀들을 통해 은혜의 강수와 거룩함의 능력을 맛보고자 한다. ‘최고의 하나님, 최선의 예배(My Utmost Worship for His Highest)’를 주제로 천하만사를 감당키 전에, 먼저 성도 각 사람이 신실한 예배자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내용이다.

 

구구절절–교회와 예배 

 

개 교회 사역들을 두고서 구구절절 이렇게 쓴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와 목회자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연말을 고통스럽게 보내는 이들이 많다는 소식 때문이다. 대단할 것이 없다. 그러나 조금의 실수와 부족함을 함께 나누어 조금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면,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목회자, 하나님의 자녀가 힘써 할 일이 무엇인가? 다양한 사역보다 본질을 회복하고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온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복마전 같은 세상의 전투현장에 전쟁하러 나아갈 때 무엇이 필요한가? 먼저 예배에 성공하고. 기도에 승리해야 한다. 교회는 그 전투의 본진이다. 그 외에 무엇을 더 하리이까? 송구한 개 교회 내용이 조금이라도 유익하기를 소망하며 조심스레 적어봅니다.    

davidnjeon@yahoo.com

12.2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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