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 같은 문제 앞에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마음의 창을 태평양 쪽으로 열고 새벽마다 공예배마다 기도를 드린다. 기도의 책임을 느껴 모든 공적 대표기도에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를 꼭 하도록 했다. 이처럼 사랑하는 조국이지만 신문과 뉴스는 거의 보지 않으려 무진장 애를 쓴다. 대부분이 정치적인 내용들로 물고 뜯고 싸우는 내용들을 보며 기도하는 것이 방해한다면, 굳이 영혼을 지저분하게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정치는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따라 공방을 펼치고 더불어 궁극적인 목적인 국민의 평안함과 행복을 가져오는 행보여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판 정치현실은 너무 뻔 한 이야기, 너무 속과 겉이 명확히 보이는 이야기임에도 덧칠에 덧칠을 반복하며 개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저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산수 같은 문제를 앞에 두고 왜 싸움을 하고 있나’ 그렇게 표현한다. 산수 같은 문제도 세상에 마음을 뺏기고 나면 고등수학보다 더 어려워짐을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삶 자체의 존귀함과 가치의 품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한번 두 번 하면 부끄러움을 가지겠지만 여러 번 자주 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인격을 형성하여 영적인 감각들을 잃어버림과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 결과 가장 심각한 피해자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이다. 그 다음으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과 자녀들에게 전파된 전염성과 함께 맞장구를 쳐준 주변 그룹들과 더불어 그러한 거짓을 용인한 공동체가 고스란히 상처와 피해를 떠안게 될 것이다.
가치의 품격
NBC 방송이 개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에서 사회를 본 앵커 ‘서배너 거스리’에 대해 언론이 호평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자의 질문을 뭉개거나 회피하면 집요하게 되묻는 거스리의 인터뷰를 놓고 좋은 평가를 내린 것이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거스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자 등의 글을 리트윗해 논란이 되는 것과 관련해서 왜 그랬는지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건 리트윗이었다. 누군가의 의견이었고 나는 별다른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리트윗을 많이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거스리는 “당신은 대통령이다. 아무거나 리트윗 할 수 있는 누군가의 ‘미친 삼촌(crazy uncle)’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한 것이다.
사회자가 대통령에 대해 요청한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정치라고 하지만 사람이 가지는 마땅한 품격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말과 글과 행위가 그가 가진 가치의 품격을 증명하는 것인데, 정의롭고 당당하게 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선명하게 말한 것이다.
미국 땅에 살면서 우리가 가진 신앙에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마지막 지지를 결정하지만 미국이 예전 같은 기독교적인 포용과 관용의 가치를 많이 상실한 것을 본다. 이것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웃과 세계를 향한 따뜻한 나눔과 포용의 리더십이 미국의 품격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미국의 패권주의적인 입장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청교도의 신앙에 기반한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나라를 세워가야 될 최고 지도자의 품격과 생각은 많은 안타까움을 준다.
사람의 품격과 그 향기
최근 한국의 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목회를 하는 후배가 영상을 한편 보내왔다. 그와 나는 중, 고, 대학시절을 함께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했다. 특히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해 후배로 뗄 레야 뗄 수 없는, 별걸 다 아는 그런 사이다. 그런데 이제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보지 못한 지가 벌써 20년이 훨씬 넘어간다. 그가 보낸 영상은 설교시간에 나에 대해 언급을 하고, 사후 보고라며 보내준 것이다. 아련한 추억의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중고등학생 어린 나이였지만 어린 학생들답지 않게 아이어른들처럼 복음에 대해 뜨겁게 생각하고 나누던 말의 기억들을 소환해준 것이다. 감추어진 채 드러난 좋은 것만 포장해주어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너무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 되었다. 오래전 철부지들의 이야기들이 먼 훗날 중년의 인생에게 추억의 한 포맷이 되어 기억의 즐거움을 제공한 것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주는 향기가 아주 찐하다.
소박함도 품격의 향기
그런데 그 향기가 누군가에게는 악취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된다. 지금 나의 말과 행동들이 현재를 포함해 미래 그 언젠가 나의 품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테니 말이다. 사람이 갖는 품격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냄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소박하지만 좋은 냄새나는 이야기가 있어서 옮겨본다. 강원도 영월을 배경으로 고향 냄새,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감자 심포니’라는 영화를 만든 전용택 감독과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1985년, 전용택이 연세대학교 불문과에 입학하고 3월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선배와 용택은 선후배들과 어울리다가 오밤중에 둘이서만 신촌 어느 놀이터에 남게 된다. 둘은 무척 배가 고팠다. 선배는 돈이 한 푼도 없고 용택에게는 순댓국 한 그릇 사 먹을 돈이 있었다. 용택은 식당에 들어가 순댓국 한 그릇을 시킨다. 용택이 묻는다. "형, 안 먹나?" 선배가 대답한다. "괜찮다. 너 먹어라" 선배는 한 번 더 권할 줄 알고 아니라고 했는데, 용택은 더 권하지 않고 혼자 그 한 그릇을 다 먹는다. 선배는 그날 그때 일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한 번 더 권할 줄 알고 아니라고 했는데, 깔끔한 용택군은 더 권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먹고 싶었지만 아니라고 했기에 억지로 참았다. 사실 숟갈을 들이대고 같이 먹어야 했지만 지금도 고질인 자기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습성, 1년 선배라는 위치, 내가 뱉은 말을 책임져야 하는 그 무익한 의무감, 뭐 그런 걸로 인해 찾아온 그때의 배고픔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용택군은 그처럼 나의 허기의 기억과 함께하는 존재이다(2010년 4월 6일 이남호).
선후배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소박한 품격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선배는 후배의 욕심(?)을 깔끔함이라고 표현하며, 후배 탓이 아닌 자기 책임으로 말한다. 더불어 그의 생각을 붙들고 있는 ‘선배라는 위치, 뱉은 말에 책임지려는 의무감’ 등을 곱씹어 본다. 스물, 스물한살 어린 나이에 선후배간에 한 살 차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킬 것을 지키려는 마음과 배려의 따뜻함을 본다. 이것이 그의 삶의 품격이 되고, 그것이 인격의 향기가 된 것이다. 국민생각은 없고 오로지 권력을 위해 검고 흰 것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결코 찾을 수 없는 품격의 향기이다.
100세의 품격-작고 사소함
100세의 품격을 살고 계시는 김형석 교수의 말이다. ‘30-40대에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면서 살았다. 50부터 80까지는 선과 악의 가치를 가리면서 지냈다. 최근에는 추한 것을 멀리하고 아름다운 여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옷차림은 그 작은 한 가지일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20년 전부터 멋지게 입고 다녔으면 좋았을걸 하면서 혼자 웃었다.’
100세 인생을 살면서 그가 생각하는 향기 나는 인생의 일은 복잡한 것이 아님을 증거 하는 말이다. 환언하면 욕심대로, 누릴 만한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품격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옷 입는 것 한 가지라도, 말씨와 웃음소리 하나를 통해서도, 아주 작은 것 한가지씩부터 무례함과 천박함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바꾸어 가야한다.
과거의 교회를 생각하면 항상 좋다. 그리스도의 좋은 냄새가 있었고 품격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영원한 세상에 잇대어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너무 많은 부분에서 세상을 흉내 내고 카피하려든다. 어린 시절 교회 어른들의 모습은 참 좋았다. 그런 교회를 꿈꾸게 하였다. 지금처럼 좋은 차도 집도 없었는데 늘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고, 나누는 대화의 언어들도 달랐다. 늘 감사, 늘 웃음, 늘 기쁨과 찬양이었다. 식어서 딱딱하게 굳어진 칼국수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아이를 둘 셋 업고 안고 하면서도 주님 앞에 나아와 성도됨의 감격을 누렸다.
그러나 지금은 손에 든 작은 전화기 하나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해졌다. 거칠고 사나와졌다. 교회보다 법정의 재판관과 변호사가 훨씬 더 의지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눈에 보이는 것과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곧장 손과 발의 행동으로 나타낸다. 아주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긴다. 결국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뿜어내지 못함으로 삶에서 누릴 아무런 감격도 없고 공동체에 끼칠 선한 영향력도 부재한 향기 없고 품격 없는 인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가을에 자신의 영혼과 대면하고 대화하기를 권한다. 기도하기 어려우면 많이 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여겨진다. 걷고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이 오고 갈 것이다. 그리고 이내 상념에 젖어들면서 참 좋았던 기억의 향기들이 투명하게 떠오르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자신의 삶에 무엇이 그토록 소중한가를 돌아보며 진실하게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시간이 깊어질수록 마침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품격으로 빚어지게 될 것이다.
davidnjeon@yahoo.com
10.2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