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미래와 교회(2)

- 회복, 부흥, 권능
전남수 목사

13%에 대한 대책

 

지난 주 달라스에서 미래목회자 연구모임이 있었다. 달라스에서 20년 세미한 목회에서 사역한 후, 한국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으로 사역하고 있는 최병락 목사의 코로나 이후의 목회적 현상에 대한 발제와 토론의 시간들이 있었다. 이민교회와 한국교회를 비교하면서 적절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는데, 눈에 띄는 연구 자료가 있었다. 

온라인예배가 많이 정착이 되었지만 코로나시기를 지나면서 예전에 교회를 출석하던 이들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 예배를 전혀 드리지 않은 비율이 예전에 비해 13%가 되었다는 부분이다. 최병락 목사의 주요한 논점도 13%에 대한 대책의 문제였었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들이 갈 길을 잃어버렸다는 데 주목하며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자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최 목사 본인이 섬기는 교회는 60% 가까이 현장예배를 다시 회복하였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쉽지 않는 전투과정을 벌이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그가 전한 몇 가지 한국교회의 현상을 전달해본다면 교회가 처음 현장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는 사람들이 긴장감가운데 온라인예배 앞으로 모였다고 한다. 교회에 가는 것처럼 외출양복으로 옷을 준비하고 헌금예물을 정성되게 준비해 드렸는데, 갈수록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복장 자율화가 이루어지고 조금 더 지나니 목회자의 설교가 길어지면 자세도 편안하게 영화 관람하듯 그렇게 예배를 드리게 되어졌고, 그런 지루한 상황을 고려해서 교회들은 전체 예배시간을 1시간 이내로 축소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영상이 준비되어 있으니, 꼭 정한 시간에 예배할 필요 없이 언제라도 들으면 된다는 생각에 예배의 모습들이 흐트러지기를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조금 더 자유로운 영혼들은 주일에 양수리나 청평으로 놀러 다니면서 ‘아 행복해요, 자유의 세상’이라는 글귀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코로나 초기 ‘온라인예배’를 선도했던 교회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전면 온라인예배로 전환한 교회는 성도들의 질문에 답을 잃었다고 한다. 온라인예배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당신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두세 사람 모인 곳에 주님도 함께 하시며 주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며 가정예배를 실시했던 교회가 이제는 방역을 하고 ‘교회로 와서 거리를 띄우고 마스크를 쓰고 예배하자’고 하면, ‘왜요? 여기도 예배드릴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최병락 목사의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을 하면서 이민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며, 교회와 목회자들이 취할 바른 자세와 태도가 무엇인가를 고민했었다. 궁극적으로 교회가 참 안전한 곳이며, 이곳이 피할 곳임을 강조해야 하고, 이를 강조할 뿐 아니라 성도들을 안전하게 이끌 실제적인 방법이 필요함에 의견을 모았다.

 

교회와 예배는 회복의 통로

 

교회가 먼저 앞서서 호들갑을 떨게 될 때 성도들은 급격한 위기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진리는 변함이 없고, 교회와 예배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사상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하며, 교회에서 드리지 못하는 형편 속에서 가정과 여러 처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하여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제한적이고 임시적인 것임에 불과함을 강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며, 그렇게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이들을 위하여 능력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참 성도는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채, 예배에 실패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 

예배는 정수기와 같다. 온갖 삶의 복잡하고 분주한 문제들, 어떤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도, 소망의 메시지를 듣고 힘을 내게 하신다. 어떤 여성분이 칠순잔치를 하는데, 자녀들 넷을 앞에 두고 한마디 인사말을 한다. 자신은 30대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이 넷을 잘 키웠는데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인사말처럼 회고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암으로 투병하던 남편이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 공원으로 산책을 가자고 했다 한다. 그곳에서 남편은 1시간동안 자기 손을 꼭 잡아주더라는 것이다. 그때 그 한 시간이 자녀 넷을 키우며 40년을 버티고 견디게 해준 힘이었다는 고백이다. 

물리적으로 1시간과 40년의 시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이 가능한 것이 영적인 세계이며, 영적 존재인 인간이 경험하는 신비라고 할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손에 우리가 터치되는 것이다. 주일 한 번의 예배가 한주간의 삶을 바꾸며, 새벽 미명에 드리는 하루의 첫 시간의 예배가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예배를 세상의 다른 오락과 바꿔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바보 같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평생에 몇 번 주일을 지킨다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실제적인 일곱가지 제언

 

코로나는 결국 지나갈 것이다. 백신도 주실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었을 그때, 주님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숙제검사를 하실 것이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는, 불현듯 찾아온 휴가 같은 쉼의 시간으로 생각하기에 상황은 심각하다. 포스트코로나를 생각하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함께 토론하고 논의한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작은 지혜이지만,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대비하면 유익함이 있을 것 같다.

 

1. 나팔을 세게 불어라. 

영적인 의미에서 성도들은 양떼이며, 목사는 목자장이신 주님께 부름 받은 목자들이다. 목자는 양들의 귀에 선명하고도 분명하게 진리의 나팔을 세게 불어야 한다. 양떼는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그 복을 누린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이런 것이다.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름 부어 세운 주의 종들이 낙심하지 않고, 힘차게 복음의 나팔을 불며, ‘교회로 나아오라, 교회에서 만나자, 교회가 안전하다. 교회에서 함께 주의 영광을 보자. 교회는 주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그렇게 힘 있고 담대하게 외칠 때, 양들을 두려움 속에 울다가도 따라올 것이다.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나팔을 불어도 안 따라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괜찮다. 나팔을 불어도 따라올지, 아니면 제 갈 길로 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목자가 나팔을 불지 않으면 양들이 따라올 가능성조차 전무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께 결과를 맡기고, 힘차게 교회로 오라고, 예배드리자고 나팔을 불어보자. 그렇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처해질 것이다

 

2. 설교에 깊이를 더하라. 

평소, 심방사역과 행사들로 인해 설교준비에 늘 부족함을 느끼며 피곤한 모습으로 강단에 설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이 강제적으로 멈추어진 때를 맞이하였는데, 이를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욱 깊이 새벽 전에 나아와 많이 기도하고, 낮 시간에는 묵상하며, 저녁에도 그 말씀을 잘 다듬으면서 새벽시간부터 수요, 주일, 금요일까지 넉넉한 설교, 부흥회를 준비하듯 그렇게 준비하며 시간과 정성을 쏟을 때, 분명히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리라 본다. 그렇게 준비한 설교는 전하고 싶어 못 견디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시리라 본다. 특별히 과거의 설교들도 잘 분류하고 정리해본다면 1차 묵상과 요약을 넘어서서 더 깊은 묵상의 작업과 원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소망을 설교해라.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성도들에게 소망의 설교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낙심과 두려움과 염려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소망과 꿈과 비전있는 삶이다. 성도들은 목회자의 설교, 귀로 듣는 내용에 따라 삶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이 믿음을 가지고, 환란 중에 기뻐하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은혜를, 소망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면 전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많은 유익이 있으리라 본다.

 

4. 교회를 기대하게 하라

코로나로 인해 방콕, 집콕하는 성도들이 많다. 그들이 교회를 궁금해 하고 보고 싶은 곳으로 여겨지도록 조금의 변화라도 추구할 것을 권한다. 한마디로, 교회 보수공사를 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카펫공사, 놀이터 개보수 작업, 야외쉼터, 게시판을 바꾸거나 페인트 작업을 통해서라도 교회를 궁금해 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계획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5. 교회 영상을 점검해라. 

필자에게 설교는 교회 와서 듣는 것이지, 영상으로 보고 듣는 것은 아무런 유익함이 없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이 이것을 강제하고 있기에 시도해보았다. 결과적으로 많은 유익이 있었다. 영상을 만들면서 많은 부족함들을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예를 들면, 지나치게 손동작이 많다던가?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 시선을 일정하게 하지 못하는 것들 등등.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고 볼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이렇게 목회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변화하려는 노력은 결국 성도들과 교회의 유익함이 될 것이다. 

 

6. 교회로 모이게 하라. 

교회는 모이는 교회여야 한다. 모이니까 뭔가를 하게 되고 열매가 나타난다. 때 아닌 부흥을 맛보는 부서가 있다. 청년부이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의 입학식이 취소되고, 기숙사 생활이 되지 못하면서, 멀리 갔던 자녀들이 교회에 모이게 되었다. 청년부의 때 아닌 모임 열기가 생겼다. 너무 가까이 모이는 것이 위험한 면이 있지만, 잘 양육하면 한명 한명의 청년 아이들을 귀한 교회의 일꾼으로 양육할 수 있는 복된 기회가 될 것이다

 

7. 계속 일해야 한다.

다양한 사역의 방법을 통해 사역이 멈추지 않게 해야 한다. 사역의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 시기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께서 교회와 사역자에게도 동일하게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실제 일하는 교회는, 이런 시기에도 교회건축까지 준비하며 일하는 것을 본다. 기타 예를 들면, 동일한 새벽기도이어도 ‘어른 여름성경학교’로 바꾸어 성경공부도 해보고, 영상 가족찬양축제, 영상부흥회,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의 집중도를 높이며 과제를 주어 시상하는 방법, 구역별로 교회방문 기도제목 적어붙이기 행사 등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코로나는 결코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쉼을 주기위한 목적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를 더 주의 군사로 시험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계속해서 멈추어 있지 않고 일해야 한다. 그리하여 코로나를 넘어서는 역동적인 그 힘으로, 코로나 이후에 후회와 탄식과 핑계와 침체가 아닌, 힘 있는 간증을 기록하는 복 있는 교회로 주님 앞에 세워져야 할 것이다.

davidnjeon@yahoo.com

08.1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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