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문성준 선교사 장녀 아영 양 후원자 찾기


남아공 문성준 선교사의 장녀 아영 자매를 돕기 위해 뉴저지 한성개혁교회 송호민 목사가 지난달 26일 낮 기독언론들과 만남을 가졌다. 송 목사는 문성준 선교사와 총신대 동문으로 문 선교사의 사역을 후원해오고 있다. 

코비드 펜데믹의 힘든 상황에서도 현장을 지키며 사역하고 있는 문성준 선교사에게서 아영양의 소식을 전해 듣고 도울 방법을 모색하던 중 언론에 알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영양은 고등학교 5년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남아공 대학입시고사에서 전국 3등으로 졸업했으며 미국의 브라운, 코넬, 듀크 등 5개 명문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장학금 없이는 입학이 불가능한 상태. 송호민 목사는 최근 문 선교사와 통화에서 ‘모든 것을 접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러나 마음이 너무 아프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인재양성 차원에서 후원자(단체 및 회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성준 선교사는 2004년 12월 신학공부 차 가족(4명)이 남아공에 갔으며 박사과정 중 선교사로 소명을 받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선교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선교사역을 감당하며 사역이 커짐에 따라 두 딸의 역할도 더 크고 빛나게 됐다. 현재 남아공 마당교회는 매 주일 300여 명이 예배를 드리며 그중 절반은 어린이들이다. 

▲문성준 선교사 이메일: moondy71@gmail.com

 

미 5개 명문대 입학허가 받았지만 장학금 없이 입학불가

7살부터 아버지와 동역, 음악 가르치기, 방과후 수업, 집짓기 등

 

아영이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남아공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문성준 선교사의 딸 문아영입니다. 아버지의 신학공부를 위해 부모님을 따라 이곳 남아공으로 온 것은 2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공부를 마칠 때까지 온 가족은 아버지의 공부에 집중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공부를 마치시고 남아공에서 선교를 하시기로 작정하시고 GMS에서 훈련을 받으셨을 때는 제가 7살이었고 그 때부터 아버지의 선교를 따라다니며 함께 했습니다.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사람들 앞에서 찢어진 악보를 넘기며 동생과 함께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역이 넓어지고 커짐에 따라 제가 감당해야할 선교의 몫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매 주일 저는 선교현장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선교를 시작했을 때 제 마음도 여느 다른 아이들과 같이 가기 싫었고 투정도 부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옷 투정, 음식 투정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선교지에서 심방을 돌아야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그들이 먹는 음식을 보고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내가 그 아이들에 비해 풍족하게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께 사소한 투정은 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선교지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역과는 별개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보기도 했고 방과후 수업도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집이 없어 힘들게 사는 선교지 사람들에게 나무 집을 짓는 일을 부모님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행정적인 일들이 많아 제가 직접 남아공 공무원들을 만나 행정적인 일들을 도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21채의 나무집을 지었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돕는 일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너무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학생인 저로써는 모든 일을 감당하기에 벅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도와주다가는 쉽게 지치고 한계가 올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라가 더 큰 생각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졌습니다.

매 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날로 선교지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면서 공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좋은 성적으로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고등학교 5년 동안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마지막 남아공 대학입시고사에서 전국 3등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였고 저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욱 믿을 수밖에 없는 큰 상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공부하던 중 미래를 위해 생각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남아공 입시준비도 바쁘고 한참이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더 큰 세상을 바라보기로 하고 미국 대학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짬짬이 시간 내 SAT 시험도 준비하고 미국 대학정보도 알아보고 에세이도 준비했습니다.

저는 이미 남아공대학에서 영주권이 없는 저에게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영주권이 없던 것이 많이 속상했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남아공 영주권이 없기에 더 큰 세상인 미국을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남아공 입시를 마치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후 미국 대학에 원서들을 제출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 장학금 신청과 함께 서류를 제출했지만 불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대학들은 장학금을 신청하지 않고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장학금을 신청한 외국인은 합격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너무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고 내 성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류를 제출한 나머지 5곳의 훌륭한 대학에서 모두 합격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브라운대학을 결정했습니다. 브라운대학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전공을 1학년 때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한 전공들은 있지만 가능한 저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저에게 맞는 전공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5년간 공부는 저에게 있어서 정말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일 저에게 미국에서 공부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로 생각하고 고등학교 때보다 더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 기회가 정말 저에게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나의 기회가 아닌 하나님의 도구로 확신 받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아공에서 문아영 올립니다.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HDQmTQfXZ8KffDK13Jrhyv9fCuNBhGUl?usp=sharing

▲연락처: 송호민 목사 (201)725-4117, homini75@hanmail.net

<이성자 기자>

05.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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