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밀알선교단 단장
가난과 고난을 성화의 과정, 하나님 뜻 이루는 과정으로 사용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장애의 고통 속에서도 기쁨으로 살아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려면 먼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죄 용서함을 받고 주권의 전이를 해야 한다(개인구원), 이것은 기본적인 첫 번째 단계이다. 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신적 생명(영생)을 누리며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통치가 온 세상에 퍼지게 하려 함이다(사회구원). 그러므로 개인의 회심과 믿음을 중요시하지 않는 민중 신학, 해방신학 등등은 용어는 성경적 용어를 쓰지만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고 하는 육신적 메시아사상이나 사이비 종교인 공산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사탄의 영향력은 예수를 영접하여 성령을 힘입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 반대로 개인의 회심과 믿음은 중요시 하지만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문제를 무시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예수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성령님을 힘입어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자연환경에까지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바른 복음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모두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장애인 전도를 통한 개인구원뿐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제도와 법을 바꾸는 노력도 힘써야 한다. 제도와 법을 바꾸는 것도 복지의 한 부분이다.
5. 장애의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예수를 믿으면 부자로 살 수 있고 사회에서 출세하게 되는가? 아니면 오히려 가난하게 되고 사회에서 핍박을 받게 되는가? 먼저 구원은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난으로부터의 해방임을 생각하자.
영생은(신적생명) 단순히 정신적인 것만을 풍요로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물질적인 풍요도 함께 포함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미래적이지 않고 현재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에서 정신적인 풍요뿐 아니라 물질적인 풍요까지 누리는 것을 구원의 복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하나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사탄의 권세가 아직도 작용하고 있다. 사탄의 권세가 사회, 정치, 문화를 억압하는 상황에서는 예수 믿으면 가난하게 되고 그 사회에서 핍박을 받게 된다. 이것은 무신론적 공산권이나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모슬렘권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탄은 여전히 작용한다. 불의한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가난과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장애인이 되고 불행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할 때 가난과 고난이 꼭 하나님의 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이웃의 가난과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난해지고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이, 바울이, 사도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수많은 성도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가난과 고난을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으로 승화시키시거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으로 사용하기도 하신다. 김세윤은 이렇게 말한다.
“바울은 고난이 오히려 우리를 연단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으로 성화시키는 도구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형상을 더 회복시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고난은 사탄의 권세가 아직도 실재하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려야 하는 이 시대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디어야 하는 소극적인 면도 있지만 성화의 도구라는 적극적인 면도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는 예수님이 가르친 제자도와 통한다.”
그러므로 물질적 번영을 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고 가난과 고난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장애의 고난도 장애인 본인을 성화시키며 주님의 위로를 전하는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장애인은 장애의 고난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더 확실하게 증거 할 수 있다. 싸그만은 이렇게 말한다.
“내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할 만한 가장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가장 확고히 믿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나는 기형인 육체가 고통의 짐이라고 할 만한 어떤 젊은 여자를 알았다. 그녀가 앓고 있을 때 한 젊은 인턴이 그녀의 침상 곁에 서서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나도 자주 불평을 하는데 당신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명랑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녀는 인턴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턴이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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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