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간증집회를 위해 LA 체류 중인 박성현 교수와 장현경 박사가 지난 7월 29일 본사를 방문했다.
박성현 교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이스라엘 고고학 및 인문학 학사,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고고근동문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하버드대학교 근동어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든콘웰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내인 장현경 박사 역시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의료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MIT 박사후과정을 거쳐 현재 보스턴 소재 제약회사 책임연구원으로 헌팅턴병과 파킨슨병의 치료제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누가 보아도 이들은 다섯 달란트의 소유자인 듯 한데 여전히 ‘한 달란트를 받아 누린 하나님의 큰 은혜’를 외치며 리더양성을 위한 교육은 물론, 보스턴에서 노숙인을 돌보는 사역과 쉘터 사역을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본사를 방문한 박교수 부부의 삶과 신앙,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먼저 그가 작년까지 학장을 역임했던 고든콘웰신학대학원의 보스턴 캠퍼스의 특징을 묻자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보스턴캠퍼스는 미국 도심사역의 선구자이며 가장 다양한 다문화적 신학대학원 캠퍼스’라고 소개한다. 1976년 마틴루터 킹 목사가 청소년사역자(Youth Minister)로 섬겼던 Twelfth Baptist Church에서 Center for Urban Ministerial Education(CUME)이라는 이름으로 첫 강의를 시작한 보스턴캠퍼스는 예례미아 29장 7절의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라는 말씀을 토대로, 미 전역의 교회들에게 도심사역의 ‘예레미야 패러다임’을 제시한 곳이었다. 현재 북미 여러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도심사역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고든콘웰 보스턴캠퍼스의 ‘예레미야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런 도심사역의 중심부에서 박성현 교수는 고든콘웰의 첫 동양인 학장으로서 지난 2020년 6월까지 재직했다. 그의 재임기간동안 보스턴캠퍼스는 재학생 4백여 명 중 84%가 다문화권 출신으로, 신학 강의가 영어는 물론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불어로 진행되는 캠퍼스로 한층 더 발전했다. 백인학생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이민자출신의 학생들을 위한 과정을 부지런히 개발한 결과였다.
미 이민교회 가운데 장자역할 맡은 한인교회, 타 이민교회 도와야
특히 그의 재임기간동안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보스턴캠퍼스의 교수, 직원, 학생들이 이뤄낸 ‘평안’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많은 대학은 물론이고 신학대학원들마저도 인종-문화 갈등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이기에 보스턴캠퍼스가 실천한 ‘평안’은 큰 의미가 있었다. 지난해 6월 박 교수는 더 심도 있게 ‘평안’을 추구하고자 학장직을 내려놓았다.
다양한 언어권의 사역자 양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고자 고든콘웰은 지난 2020년, 라티노-글로벌 프로그램을 신설하게 됐고, 현재 그 안에서 일반신학석사과정(MATS)이 다양한 언어로 진행되고 있는데, 박 교수는 현재 이 글로벌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도록 산파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특히 이 역할을 자처한 이유는 다문화권 신학생들을 품는 ‘멘토’가 부족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늘 그의 제자들에게 ‘성읍의 평안’을 구하는 사역을 하라고 가르쳐왔다. 그런데 피부색이 다르고 영어를 모국어로 갖고 있지 않는 이민자 사역자들이 미국의 ‘성읍’에서 ‘평안’을 추구하기엔 너무도 많은 장벽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 걸음을 같이 걸어줄 멘토가 필요한 것이다. ‘평안’을 구하라는 방침을 세우는 것이 학장으로서 지난해까지 그가 했던 일이라면, 이제는 그 일을 교수로서 멘토로서 같이 하고자 함이 현재 그의 바램이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사태를 맞아 신학생들이 등록금을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박 교수는 아내 장현경 박사의 권유로 부부가 함께 ‘한 달란트’를 출간하게 됐다. 이 책의 판매수익금은 전액 고든콘웰의 중남미권 출신 신학생들과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 바이블 칼리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며 다민족 신학생들의 상황을 설명한다.
저서 ‘한 달란트’ 수익금 전액은 다민족신학생과 베들레헴바이블칼리지학생 후원
“미국의 많은 이민교회들은 공통적인 한 가지 어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정규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남미권 출신 교회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극소수 목회자를 제외하고는 사역자들이 사례비를 받지 못하고 사역하기 때문에 주 중에 청소나 건축현장, 정원일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더군다나 학생융자 혜택에서도 대부분 제외되기 때문에 비싼 등록금을 마련해 신학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 고든콘웰은 중남미권 신학생들을 위해 등록금의 2/3를 장학금으로 해결해주는 과감한 결단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어려워진 현재 중남미권 출신 신학생들은 거의 모두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월 250달러를 지불하지 못해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 부부는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해 드릴 수 있는 ‘한 달란트’를 지난 3월에 출간한 것입니다. 이 의도는 책 반 표지 뒷면에 적혀 있습니다.”
박 교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울러 저희는 한인교회가 다른 뭇 이민교회들 가운데 장자역할을 할 부르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한인교회들로 하여금 목회자들의 신학교육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뭇 이민교회들에 비해 풍성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을 먼저 누리게 한 것은 우리로 말미암아 뭇 이민교회를 도울 수 있게 하려하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목회자들로 하여금 말씀 위에 잘 세움을 받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도움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민교회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하나의 선교사역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250달러씩 정기적으로 신학생을 후원해줄 수 있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한인교회들 가운데 많이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하며, 세계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한 한국교회의 각오와 열심이 이제는 타 이민교회들의 목회자를 세워주는 한인교회의 비전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이들의 눈에는 이제 박 교수는 다섯 달란트를 가진 모습이지만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학창시절의 아픔이 남아있다. 그 아픔들이 지금의 박성현 교수를 만든 초석이 됐고, 그 아픔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그는 “사는 날 동안 쉼 없이 증거 해야 할 또 하나의 사명”이라고 입을 열었다.
“교수라는 사람이 중학교를 자퇴했고, 고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 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제가 교수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요. 지금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살리고 이끌어주시고 결단하게 하셨기에 가능했다”며 그의 이야기는 파라과이 이민자로 살아야했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갔다.
박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1976년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 이민자로 살며 당한 수 많은 경제적 역경은 아버지로 하여금 예수를 만나게 하는 기쁨도 가져다주었던 한편,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박 교수는 자퇴를 하고 야채장사에 나서야 하는 아픔도 주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이사야서 43장에서 어린 박성현을 만나주셨다. 후일 복학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때 가업을 위해 또 자퇴서를 내야 했고 아울러 추진 중이던 하버드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는 연이은 사업의 좌절로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드는데, 하나님은 베드로전서 1:24-25절 말씀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시고 하나님만의 방법대로 이스라엘 유학길에 오르게 하셨다.
이스라엘에서 그가 받은 가장 큰 복은 장현경을 아내로 맞은 것인데, 장 박사는 “내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남편은 선교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졌지만 생활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컷다”고 회고하며 “그것은 예수 한 분만으로 살 수 있게 하는 훈련의 시작이었다”고 고백한다.
이스라엘 ‘광야’의 훈련을 거치며 두 부부는 배워간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 이사야 61:1-3 말씀이 주어졌을 때 당시 고든콘웰신학대학원의 신학생이 되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박성현은 말씀에 순종해 그 계획을 접고 자비량선교사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섬기는 가운데 그의 작은 한 달란트가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삶 가운데 또 다른 달란트를 남기는 감격을 체험하는데, 뿐만 아니라 후일 하나님은 박성현을 고든콘웰신학대학원의 교수로 세우시고 또 그에 앞서 박사학위는 오래 전 가사를 돕기 위해 포기했던 하버드대학에서 받게 하셨다. 하나님의 경륜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다.
이제는 고든콘웰의 학장을 지낸 그를 더 이상 한 달란트가 아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라 해야 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여전히 그는 “한 달란트의 작은 자의 모습으로 섬김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온두라스 집회 때 이야기로 대신했다.
“중학교를 자퇴한 시절, 대학을 포기하고 공장 일을 할 때도 한 달란트였고, 팔레스타인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도 늘 한 달란트였는데, 온두라스에 갈 때는 다섯 달란트를 가진 자 같았지요. 이미 하버드대학 출신 박사이며 신학대학원 교수였지요. 다섯 달란트를 맘껏 사용하리라 다짐하고 갔지만 마침 수년의 가뭄 끝에 내리기 시작한 폭우가 한 달 내내 이어져 양철지붕인 강당에서 강의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버드 박사의 목소리는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삼켜져 그 어느 누구도 제 강의를 알아들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 때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달란트의 삶을 살던 시절의 간절함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학생들은 그 간절함으로 기도했고,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한 주간 내내 강의시간에 맞춰 비가 그치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다섯 달란트, 열 달란트를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움직이시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비록 한 달란트라 할지라도 믿고 순종함으로 나아갈 때 다른 한 달란트를 남기게 됨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사건이었습니다. 저희에게 허락하신 ‘한 달란트’로 또 한 달란트를 남기게 해주실 주님 앞에,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 날마다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며 사역을 감당해 가고자 합니다”라고 앞으로의 사역의 모습도 내 비친다.
이번 LA 방문을 통해, 남가주사랑의교회(담임 노창수목사), 남가주든든한교회(담임 김현인목사), 성화장로교회(담임 이동진목사) 등에서 말씀과 간증 집회를 인도한 박성현 교수는 다민족 리더들을 키우는 이 일에 한인교회들이 적극 협력해줄 것을 당부하며 ‘한 달란트’ 책속에 자세한 박 교수의 신앙간증이 수록돼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의 ‘한 달란트’는 미주두란노서점(213-382-5400)에서 구입할 수 있고 수익금 전액은 다민족 신학생과 베들레헴 바이블칼리지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사용된다. 자세한 것은 hyungyungjang@gmail.com로 문의하면 된다.
<이성자 기자>
08.2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