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9년까지 서울 강남 OO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하나님께 약속했던 윗마을 선교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해 9월에 교회사임을 계획해 놓았습니다. 그해 1월부터 윗마을 선교지에 나갈 꿈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던 2월 어느날 둘째 출산을 준비하던 날, 21개월 된 첫째 아들이 갑자기 심장병으로 중환자실에 실려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심장 박동기를 달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걷거나 달리기도 할 수 없고, 성장도 안된다는 닥터의 말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당장 수술도 할 수 없는 것이, 첫째가 전염병 로타 바이러스에도 걸려있어서 일단 중환자실에 격리하고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하였습니다.
멀쩡하던 아들이 갑자기 심장병에 중환자실에 격리된 것을 보면서 저는 머리가 하얗게 되었습니다. 내가 뭘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선교사로 헌신한 나에게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하나님이 뭘 실수하고 계시다는 생각에 따져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선교 나가겠다고 헌신했는데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주십니까? 제가 선교지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까? 도대체 어디서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 매일 교회 새벽예배를 인도하면서 저는 그렇게 새벽 제단에서 울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가며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들의 치료를 놓고 기도하던 어느 날, 찬송가 101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을 찬양하다가 저는 하나님의 망치로 머리를 맞는 것 같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 아들의 이름은 ‘예수’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천지에서 가장 복된 예수 이름을 지어주면서 제 아들의 인생이 형통하고 평안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아들을 보면 “아들아, 넌 하나님과 같은 복된 이름을 가졌어!”라고 그 이름을 자랑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101장을 부르면서 충격에 빠진 것입니다. 1절까지 괜찮았습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그렇지 내아들의 이름이 이렇게 높아져야지 아들 인생이 여기서 이렇게 죽을 리 없어!”라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2절을 불렀습니다. ‘주 십자가에 달릴 때 명패 쓰인 대로 곧 유대인의 왕이요 곧 죄인의 왕이시라’
이 가사에 저는 머리와 무릎을 두드려 맞듯이 저렸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복을 받는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위해서 유대인의 왕으로, 죄인들의 왕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라고 지어진 이름이었습니다. 그것도 나시기 전에 이미 그렇게 삶이 예정된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저도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름을 지었는데 이 가사가 아들 미래를 예고한 듯 했습니다.
“내가 이름을 잘못 지었구나! 형통은 고사하고 내 아들 예수님처럼 죽게 생겼네~!” 성도들을 앞에 두고 새벽 찬송을 인도하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인도자여서 찬송을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찬송을 부를수록 찬송 가사가 아들의 미래로 해석되면서 머리에 들어오는데 머리와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그 새벽에, 예수 이름 지어주면 인생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그 영적 교만을 깨닫고 ‘내가 붙여서는 안 되는 하나님 이름을 내 아들에게 붙였구나~! 정말 내 아들이 예수님처럼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로 오열을 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어요! 예수님의 이름을 제 축복받는 데 쓰려 했어요! 예수님 용서해주세요! 제 아들이 그래서 지금 죽어가나 봐요! 하지만 그 죄는 제 죄니까, 아들을 죽이지 마시고 아들의심장과 제 심장을 바꿔서라도 제가 죽고 어린 아들은 살려주세요!” 기도하였습니다.
또 어느날 ‘예수님 사랑을 전하자’라는 설교를 준비하는데, 하나님께서 “너는 예수님 사랑이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3년 동안 모 선교단체를 통해서 아프리카 아이에게 매달 3만 원씩 정기후원을 하였습니다. 후원받던 아이로부터 일 년에 몇 차례, 편지와 사진이 왔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냉장고에 그것을 붙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답신을 쓸 시간이 없어! 너는 나를 만난 것 자체가 행운이야! 매월 정기 후원을 끊지 않는 것만으로도 넌 내게 감사해야 돼!” 그런 생각으로 답신 한 장, 기도 한번 한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너는 그 소년에게 단 한번 이라도 사랑을 준 적이 있느냐?!”
“그런 네가 사랑을 전할 수 있겠느냐? 사랑 타령하는 네가 얼마나 편협한지 아느냐? 네 아들을 위해서는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기도하면서 그 아프리카 아이를 위해서는 한 번도 기도한 적이 없었던 것을 아느냐? 죽어가는 윗마을 자녀들에 대해서도 기도 정보는 나누었지만 한 번도 진실한 눈물로 기도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아느냐?”
“네가 윗마을 선교사로 나가면 얼마나 윗마을 자녀들을 차별할지 모르겠다. 상처받고 가난한 윗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은 고사하고 상처만 주는 선교사가 될까 걱정이다.”
“윗마을 선교사로 헌신한다고? 사실 그것도 네 자아실현을 위한 도전이고, 영웅심에 따른 믿음이다. 네가 어떻게 상처받은 윗마을 자녀들을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겠느냐? 배고픔보다 더한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는 그들의 심정을 아느냐? 굶어 죽는 자식을 보는 엄마의 심장을 아느냐? 죽은 부모를 집 마당에 버려두고 쓰레기 음식을 찾아서 떠다니는 꽃제비 자녀들을 네 아들과 구분 없이 사랑할 수 있겠느냐? 매일 밤 수천 명씩 수 만 명씩 굶어 죽어가는 자녀들을 보는 나의 마음을 네가 알겠느냐?”
저는 제 삶의 가식과 허영심을 깨닫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제 헌신의 교묘함을 알았습니다. 제 사랑이 차별됨을 알았습니다. 윗마을 선교사 지원은 했지만 정작 윗마을 선교사 자질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선교단체 훈련받으면 선교사가 되는 줄 착각한 저를, 하나님은 그렇게 아들의 심장병 앞에서 깨뜨리셨습니다.
너는 네 아들 하나만 사랑하는 거짓 사랑꾼이라는 말씀에 저는 울면서, 저를 고쳐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차별하지 않고 윗마을 자녀들을 사랑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아픈 아들을 위해서 윗마을 자녀들을 위해서 선교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아픈 아들을 데리고 윗마을 선교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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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