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선교 “복음과 사랑의 실천” (9)

뉴저지밀알선교단 단장 강원호 목사

장애인 사역자는 이미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았고 그래서 더 다른 업적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보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장애인 선교가 무슨 특별한 선교가 아니다. 

일반 목회나 선교 등등의 근본 동기는 하나님 사랑이다. 이 하나님 사랑이 일반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일반 목회가 되는 것이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면 어린이 선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장애인 선교는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한다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목회와 선교의 동기는 하나님 사랑이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또한 하나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인간은 사랑 받지 않고 줄 수 없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사역자가 어떻게 조건 없이 장애인 이웃을 도울 수 있을까? 그것은 먼저 자신들이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해야만 한다. 고맙다고 말할 수도 없고, 성장이 일어난 것을 볼 수도 없는 장애인 선교를 낙심하지 않고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늘 공급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질문은 “내가 어떻게 만족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상대방의 진정한 필요에 어떻게 반응할까?”였다(막10:45). 이는 더 깊은 만족과 더 깊은 친밀함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럴 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을 수가 있다. 사랑을 받은 적이 있으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다. 내 필요를 먼저 채워야 한다는 조건이 없어진다. 나우웬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놀라운 사실이 생각난다. 그들은 내게 애써 영향력을 미치려 하지 않았으며 굳이 내 반응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특정한 내적 자유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보면 자기 이상의 존재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자기보다 큰 실체를 가리켰고, 그들의 자유는 큰 실체인 그분 안에서 자랐다. 이렇게 중심이 잡힌 상태, 내적 자유, 영적 독립은 신비한 전염성이 있다.”

우리는 행동하지 않아도 이미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안식을 누린다. 그러면 신자는 행동하지 않는 게으른 존재인가? 아니다. 마음의 안식을 누리고 하는 행동은 더 큰 열매를 맺게 되어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다.

 

제6절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와 장애인선교 사역자의 자세

 

하나님의 사랑 받은 자로서 장애인선교 사역자는 상향성의 미신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공급받아야 하고, 믿음으로 일을 하여야 하고, 자신의 상처와 약함으로부터 열매를 거둘 수 있어야하며 긍휼의 삶을 살아야 한다.

 

1. 장애인선교 사역자는 상향성의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기피하고 숨기는 이유는 그들은 실패자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고에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을 주시는 분이지 실패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미신이 깔려있다. 그래서 복을 성공, 실패는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예수님과 함께함이다. 예수님과 함께해도 실패할 수 있고 장애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예수님과 함께하면 세상적인 성공도 할 수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욥 등은 모두 부자였다. 구원은 결국 내세와 현세의 악과 고난으로부터 구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진정한 복은 예수님과 함께함이다. 그러할 때 성공과 실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애가 있어도 예수님 함께하면 성공한 사람이고 복 있는 사람이다. 나우웬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야망을 업신여기거나 진보와 성공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향한 잘못된 야망과 섬김을 위한 참된 야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높아지려고 애쓰는 것과, 우리 주위 사람들을 높이려는 것 사이의 차이다. 문제는 개인 혹은 공동체를 발전하고자 하는 열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향성 자체를 종교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종교로 말미암아 성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실패는 우리가 범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게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와 같이 진보의 신화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 즉 노인과 죄수와 장애인들 같은 사람들을 숨기게 된다.

 

2. 사역자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전해야 한다. 

사역자는 예수의 힘을 빌어 더 많은 성공과 업적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한다. 나우웬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우리가 전해야 하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하거나 이루어 놓은 일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 가운데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또한 모든 인류의 삶의 진정한 근본인 그 사랑을 전하도록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조건적 사랑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다른 이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면 받아들이기 보다는 의심을 한다. 그러나 정말 조건 없는 사랑임을 알 때는 감동을 받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 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모든 관계에서 조건적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전도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여 그 사랑 안에서 사람들이 평안을 가지고 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을 통하여 무엇을 입증해야만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현대인의 불안한 마음을 치료해준다. 예수를 통하여 보여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인간 모두가 갈구하고 있다. 일하고, 결혼하고, 전쟁하고, 평화하고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이루어서 사랑받고자 하는 영적 배고픔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건은 모든 역사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예수의 사건으로부터 흘러나온 사랑은 장애인선교에 필수이다. 

일반 회사에서 직원의 사랑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직원이 사랑이 부족하더라도 능력 있고 일을 잘하면 훌륭한 직원이다. 그러나 크리스천 장애인 사역자는 그렇지 않다. 물론 능력이 있으면 좋지만 그것은 선택사항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필수사항이다. 또한 일반 장애인 사역과 크리스천 장애인 사역의 큰 차이점은 일반 사역은 인간의 사랑, 법과 제도에 기반을 둔 것이라 한다면 크리스천 장애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과 조직보다 사랑의 가치를 더 두고 있다. 유명한 대학을 나오고 기능이 뛰어난다고 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크리스천 사역자는 아니다. 차라리 능력이 뛰어나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사역자가 낫다. 나우웬은 이렇게 말한다.

“사역자들에게 더 많은 훈련과 조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랑 없이 주는 빵이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것처럼 긍휼이 없는 전문성은 용서와 하나님의 왕국을 진실 되지 못한 것으로 만들 뿐입니다.”

miju92@gmail.com

06.12.2021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