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얼마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Chichen Itza (치첸이트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찬란한 마야 문명을 꽃 피웠던 도시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안내인의 설명 모두가 귀에 잘 들어 오지 않았지만 피라미드같이 생긴 높은 태양 신전이 있었는데 계절에 따라 그 신전이 움직이는 뱀의 형상을 보인다고 했다. 지상에서 박수를 칠 때마다 그 꼭대기에서 나는 기괴한 새소리를 직접 들었다. 지상에서 운동 시합을 하여 승리한 팀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의 심장을 꺼내 신에게 자랑스런 제물로 바치기도 했단다. 그날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맑았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태양신을 섬기던 그 옛날 지상 최고 문명 도시의 색깔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칙칙한 회색이었다.
지상 최대의 도시 중 하나, 세계 최고의 건물들이 그 위용을 뽐내고 즐비하게 서 있는 곳, 맨해튼. 미학적 건축물들이 그 위에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옷 입고 세상에 대해서 특히 사람에 대해서 무엇인가 잘 아는 듯이 한 마디씩 훈수를 두려한다. 그 앞을 말없이 지나거나 그 건물들을 오르내리는 사람마다 표정이 다양하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답게 피부색도 다양하다. 그런데 그 화려한 건물들, 다양한 사람들이 왜 눈에는 모두가 회색으로 보이는가. 어느 날, 그 회색의 거리를 혼자 걷고 걸었다. 놀랍게도 성공을 보여주는 듯한 마천루 밑에 빌딩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빌딩 밑에 쓰러져 있었다. ‘저들이 어디서 와서 왜 여기에 쓰러져 있는 것일까. 꿈의 나라 아메리카에 왔는데 무엇이 그들을 실망하게 했으며 꿈을 꺾어 놓았는가.’ 그들이 쓰러진 곳은 멋진 건물 아래인데 왜 그들에게 깃든 것은 짙은 그늘인가. 섬머타임이 해제되어서 그런지 회색의 도시가 급히 어두워져 간다.
조용필씨는 이렇게 노래한다. ‘발 밑에 느껴지는 차가운 아스팔트/ 저기 저 지쳐버린 하얀 가로등/ 그 어제처럼 그저 그런 가슴으로/ 나 혼자 걷고 있네/ 마음없는 거리 여기 저기/ 회색빌딩 저 넘어에/ 푸른 하늘 있을까/ 바람 따라 흔들리는/ 잎새 하나 있을까/ 종이 배를 접어 띄울/ 냇물 하나 있을까/ 돌아보는 거리에/ 별은 어디 꿈은 어디/ 여기는 회색의 거리여/ 여기는 회색의 거리여’ 회색빛 빌딩 너머에 푸른 하늘이 있을까 애타게 찾고 있다. 회색의 도시는 기만하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건물마다 상점마다 ‘나를 보라, 내게로 들어오라, 당신이 찾던 행복이 여기 있다’고 외친다. 과연 그런가.
회색의 도시들이 빛나려면 태양신을 섬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번쩍이는 네온사인을 밝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빛은 예수님 한 분뿐이시다. 안타깝게도 도시들은 예수님에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우리 예수님이 도시의 문밖에서 외로이 서 계신다. 겉은 화려한 회색의 도시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복음이다. 도시를 진정으로 춤추게 할 것은 복음밖에 없다. 많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도시를 복음의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도시의 색깔이 바뀌어야 그와 연관된 색깔도 멋진 배색 관계를 이루려 변화된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 가는 나의 백성들/ 절망과 굶주림에 갇힌 자들은 내 마음에 오랜 슬픔——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 할까/ 누가 나를 위해 가서 나의 사랑을 전할까——’ 이 찬송은 부르는데서 끝날 수 없다. 회색의 도시가 회심할 때까지.
11.1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