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가 없었다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이태원에서 120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어요?’ 지난 10월 마지막 토요일, 한창 주일 준비를 하던 나에게 아내가 들려준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아내가 뭔가 잘못 들었겠지 하면서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없었다. 서울 이태원에서 할로윈 파티를 즐기려 했던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엉키고 넘어지면서 압사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도되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젊은이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쓰러져 죽고 다치다니 이 무슨 비통한 일인가. 그날 이태원 부근에 10여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그날의 모임은 누가 달리 주최한 것이 아니어서 특별한 가이드도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군중(群衆)은 있었으나 그들을 이끌 지도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는 혼란을 통제할 사람도 없었고 위험한 상황에 방향을 제시할 사람도 없었다. 이번 사건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여러 외부적 요인들이 많이 얽혀 있었겠지만, 내부적으로도 그 급박한 어려움 가운데 발 빠르게 지도력을 발휘한 청년의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지도자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 때 그 배에는 선장이 있었고 여러 선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방송으로 학생들의 행동지침을 전달해주었다. 하지만 그 행동지침은 필요한 조치에 정반대의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안전한 배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해놓고 자기들은 앞다투어 배를 빠져나갔다. 그들은 지도자의 이름과 지위는 가졌어도 진정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책임감이 결여된 지도자는 그 공동체에 더 큰 혼돈과 고통을 자아낸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의와 긍휼이다. 모든 일에 가장 앞장서는 정의와 모든 어려운 일에 최후의 일인(一人)이 되는 긍휼이 있어야 한다.

자녀들을 잃은 가정의 아픔과 청년들을 상실한 사회의 고통은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이 아픔과 고통을 품고라도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다음 세대의 지도자 양성이다. 엘리야를 보라. 그는 로뎀나무 아래서 모든 것을 끝내려 했다. 자기 시대만을 잘 살고 마감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그의 뒤를 이끌 지도자를 세우라고 하셨다. 마침내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가 세워졌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던 여호수아도 청년 때부터 모세로부터 지도자 수업을 성실히 받았을 뿐 아니라 교회 중심으로 살면서 지도력을 함양(涵養) 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 33:11) 탈(脫) 권위를 주창(主唱)하며 모두가 권위자, 지도자를 무시하는 시대이지만 온갖 난관을 뚫고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이 내일의 교회 지도자를 키워낼 때 교회와 시대의 앞날에 소망이 있게 된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우선 채우려는 시대에 하나님을 먼저 찾으려는 젊은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파티의 장소는 청년들로 미어터지지만 예배의 자리에 젊은이들은 텅텅 비어간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나인성의 죽은 청년조차 포기하지 않으셨던 우리 예수님이시지 않은가. “청년아 일어나라”

11.5.2022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