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사진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착하디착하신 둘째 매형은 빈털터리셨으나 행복하셨다. 딸의 작은 아파트에서 딸과 사위, 그리고 세 명의 손자 손녀들의 정성을 다한 효도를 받으며 사셨다. 지난 8월 말에 사랑하는 아내가 천국으로 간 뒤 갑자기 수척해지시다가 며칠 전 새벽, 아내를 따라 서둘러 하늘로 가셨다. 둘째 매형은 아무것도 그 몸에 지니지 않았지만 딱 하나가 마지막에 입고 계신 옷 속에 있었다고 한다. 누님의 사진을 간직하고 계셨던 것이다. 조카가 한국에서 그 소식을 전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땅에서는 울고 있지만 하늘에서는 매형과 누님이 한 달여 만의 재회를 즐기실 것이다.

 

대전에서 사역할 때 아버지 학교에 참여한 적이 있다. 몇 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고 돌이킨 시간이었다. 스스로 깜짝 놀란 것은 그토록 오래 같이 살았던 아내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아내의 옷 size, 신발 size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으니 그 속마음을 어떻게 헤아렸겠는가. 아버지 학교에서 아내에게 세족식을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살짝 흘리기는 했지만, 그 후에도 단 한 가지를 빼고는 남편으로서 점수를 후히 줄 수 없었다. 괜찮은 것 하나는 지금까지 아내의 사진을 지갑 속에 고이고이 품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 칼럼을 쓰면서 다시 아내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 결혼식 날 사진이다. 하얀 신부 드레스를 입고 갸름한 얼굴에 고운 자태를 보이고 있는 독사진이다. 아내의 사진을 보니 몹시 추웠던 결혼식 날이 생각났다. 그 후 삼십구 년을 같이 살고 있다. 그동안 많이도 추웠으리라. 

 

돌이켜보니 아내에게 섬김을 받은 것은 수십 년 동안 매일매일 수없이 많다. 오늘도 새벽 예배 때 운전을 해주었고 새벽 예배 후에는 차를 타준 후 와이셔츠를 한 아름 끌어안고 다리미 판 앞으로 갔다. 나는 아내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 목회한다는 것이 무슨 면죄부나 되는 것처럼 아내의 일방적인 희생을 말없이 턱없이 요구한 세월이었다. 나는 아내의 사진만이 아니라 아내의 남모를 아픔도, 자그마한 소원도, 친정식구 만나고픈 마음도 품어 주었어야 했다. 가만히 보니 아내의 사진이 무엇인가 말하는듯한데 기왕이면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내 사랑, 지난 39년 동안 주님 안에서 당신의 목회 길을 함께 걸어 온 것이 행복했답니다. 앞으로도 기대가 되어요.” 과연 뻔뻔스런 내 바람대로 말할까.

 

그대가 남편이시라면 아내의 사진은 어디에 있는가. 스마트폰을 열면 수없이 보이는 사진 말고  빛은 바랬을지언정 인화(印畫)된 사진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사진은 위대하다. 사진은 경이로운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놀라운 발명품이다. 사진은 다시 그 날로 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유혹이다. 사진은 그 때와 지금을 잇는 구름다리이다. 사진은 사진을 찍은 그 날부터 사진을 다시 보는 그날까지 겹겹이 쌓였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광장이다. 이렇게 멋진 사진 중에 사진은 아내 사진이어야 하리라. 이 가을, 아내 사진을 꺼내 들면 어떠실까. 잠시 바라보고 그 사진을 옷 안쪽에 넣는 것이다. 그리고 홀로 산책을 나서는 것이다. 아니 아내의 사진과 함께 산책에 나서는 것이다. 아름다웠던 과거로의 산책을. 새로워질 미래로의 산책을…

 

10.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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