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대도 긴디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한번 즈음 들어보셨거나 인터넷에서도 읽을 수 있는 우스개 이야기이다. 그날 전방부대의 암호는 “자물통-열쇠”였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야간 순찰하던 신병이 어떻게 된 일인지 홀로 보초병과 맞닥뜨렸다. 보초가 외친다. “손들어! 뒤로 돌아! 자물통!” 당황한 신병은 “열쇠”라는 단어가 순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순발력 있게 대답을 했다. “쇳대” 이상한 대답에 적으로 오인한 보초병이 총을 쐈다. 신병은 죽어가면서 유명한 한마디 말을 남겼다. “쇳대도 긴데---” 억울하다. 쇳대는 열쇠의 사투리이다. 그러나 어쩌랴.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기엔 너무 늦었을 뿐 아니라 보초병이 기다리던 정확한 암호는 아니었다.

 

최근 열흘 동안 열쇠 때문에 몇 차례 해프닝이 있었다. 집 열쇠 때문에 아내가 집에 못 들어간 일, 차 열쇠 때문에 필자가 고속도로 출구 바로 앞에 펼쳐진 위험한 길을 걸어갔다 온 일, 또 필자가 교회 책상에 잘 있는 교회 열쇠를 집에 두고 왔다고 작은 소동을 벌인 일. 지난 열흘 중 아내와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느 권사님이 다급히 물었다. 자기 남편의 열쇠 꾸러미를 못 보셨냐고. 필자가 자주 지나가던 길에서 잃어버렸다니 내게 먼저 물은 것이다. 못 보았다고 대답하니 권사님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니 필시 누가 가져갔을 것이라며 상심하셨다. 들러보면 한눈에 다 보이는 짧은 길이기에 권사님과 함께 머물면서 오랫동안 찾을 상황도 시간도 아니었다. 열쇠를 잃은 집사님에 대한 여러 안쓰러움을 가지고 가던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앞으로 여러 개의 열쇠를 새로 해야 하니 얼마나 귀찮겠는가. 그동안 무슨 일은 없겠는가. 그런데 얼마 후에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집사님의 열쇠 꾸러미를 찾았다는 것이다. 길에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아니다. 그 집사님의 등 뒤에서이다. 평소 여러 열쇠를 한 줄에 매달아 목에 걸고 다니셨는데 그날 그 길에서 그 열쇠들이 집사님의 등 뒤로 가있었던 것을 깜박 잊고 아내에게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말한 것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의 납량특집이 아니다. 믿으시기는 어려워도 실제 이야기다.

 

학교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적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학교나 회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천국은 그렇지 않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그동안 내가 한 일을 자랑스럽게 적어 낼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된다. 어렸을 때 어른들을 따라 목 놓아 불렀던 찬송이 있다. “울어도 못하네 /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 하고 /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 힘써도 못하네 /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해도 / 다시 나게 못하니 힘써도 못하네 / 참아도 못하네 / 할 수 없는 죄인이 흉한 죄에 빠져서 /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 믿으면 되겠네 /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당했네 /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영원 삶을 얻으려면 울어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된다. 믿으면 된다. 나를 구원하실 이는 예수님밖에 없다고 믿으면 된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열쇠는 “믿음”이다. 이 열쇠가 어디 있나 다시 살피자. 다른 것을 믿음의 자리에 두지 말자. “쇳대도 긴데——”의 외마디가 천국 문 앞에서의 나의 소리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06.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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