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없는 샘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지난 5월 24일 텍사스주 유밸디에 위치한 롭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은 미국을 다시 한번 큰 충격에 빠트렸다. 당일 오전 11시 32분 학교에 도착한 범인은 총을 쏘기 시작하면서 4학년 교실로 침입해 문을 걸어 잠그고 대학살극을 벌인 것이다. 꽃 피우지 못한 채 떠난 19명의 어린이와 끝까지 아이들을 지키려 했던 2명의 교사, 무엇으로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이웃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충격적인 소식에 더하여진 보도는 경악, 그 자체였다. 보도에 따르면 11시 35분 신속히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12시 50분까지 총을 들고 복도에서 우두커니 대기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학살극이 아니라 인질극으로 오인했다는 현장 책임자의 판단 착오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린이들이 여러 차례 친구들이 죽어간다고 다급히 전화한 사실과 교실 안에서 끝없이 들려왔던 총소리에 대한 대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을 다투는 어려운 일을 감당하라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요 그들도 그런 사명감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 길을 걸어왔으리라. 그러나 가장 필요한 때에 그곳에는 적어도 한 시간여 동안 경찰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찰관은 없었다.

 

메말라가고 있다. 대한민국에 가뭄이 들어 농지들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농민들의 마음도 바짝 타들어 갈 것이다. 저수지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물이 바닥이라고 한다. 홍수와 가뭄 조정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평소에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올해처럼 농사짓기 어려울 때 활짝 열려야 할 4대 강의 여러 보(堡)들은 녹조현상 자연 회복 등의 이유로 이미 물을 많이 쏟아내었다고 한다. 가장 필요한 때 저수지와 보(堡)는 자기들 이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 엠 샘(I am Sam)이라는 영화가 있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이지만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 아이를 낳고 퇴원하는 날 엄마는 도망가고 “샘”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신지체 아버지가 딸아이를 홀로 떠맡게 된다. 기본적인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 하는 아버지가 과연 어린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는가의 의구심으로 사회 각 기관이 아버지와 딸을 떼어 놓으려는 작업을 벌인다. 그 아버지에게는 지식도 없었고 여러 가지 행동들은 실수 연발이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이 있었으니 자기 딸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겼다. 지식인도 교육가도 행정가도 경찰도 재판관도 변호사도 그리고 모든 조건을 가진 양부모와 그 집의 환경도 넉넉히 이겼다. 그 아버지는 외친다. “아이 엠 샘(I am Sam)” 그렇다. 여기서 아버지는 자기의 샘이라는 이름은 다름 아닌 “사랑(Sam=Love)”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아버지 샘은 사랑으로 딸을 누구보다 잘 키웠다.

 

누구도 샘에 가서 다른 것들을 요구하지 않는다. 샘 앞에서 맛난 떡을 달라고 하며 멋진 옷을 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샘은 물만 내놓으면 된다. 그런데 성경에 “물 없는 샘”이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샘인데 물은 없다고 한다. 사명은 있으나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못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수치스러운 용어가 아니겠는가. “물 없는 샘”처럼 자신의 이름에 합당한 사역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하늘의 경종을 들어보라.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벧후 2:17)

06.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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