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빨간색.... 국화꽃은 이렇게 다양한 색상을 가지고 있다. 그 꽃들이 뿜어내는 짙은 향기는 ‘그윽하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벌써 9월, 가을이다.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국화꽃이 핀다. 이 싯구도 생각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시인은 새가 운다고 한다. 그렇다. 똑같은 새소리를 듣고 한 사람은 “새가 운다”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새가 노래한다”라고 표현한다. 같은 장미꽃을 보고 "이게 뭐야? 꽃에 가시가 있다니...노굿"이라고 이마를 찡그리는 사람이 있고, "가시가 있는데도 이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니…베리굿!"이라고 감탄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감정을 갖게 되고 삶을 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없고”라는 관점으로 보았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20:5). 광야를 “없고”의 관점에서 보았다. 자신들의 정체성(Identity)을 “아무것도 없는 자”로 여겼고 결국 불평과 불만으로 불행하게 살았다. 그 똑같은 광야를 하나님은 다르게 보셨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19:4). 하나님의 관점에는 광야는 “없고”의 불행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업고” 다니시는 멋진 곳, 안전한 곳, 행복한 곳이라고 일러주신다. 그 말씀을 신뢰하고 받아들인 사람은 감사로 산다. 다윗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이렇게 고백하며 행복해하지 않았던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계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요셉은 자기가 애굽에 오게 된 것을 형들이 행한 나쁜 행동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를 그 땅에 미리 보내어 다가올 어려움을 준비시킨 것이라고 해석했다. 만일 요셉이 전자(前者)로 해석했다면 그 가정에는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후자(後者)로 해석하니 그 가정에는 용서와 행복의 꽃이 활짝 피었다.
“내가 미국에 왜 왔지?” 스스로 여러 차례 물었던 질문이다. 그대도 이민자라면 똑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내가 미국에 온 이유를 잘 해석해야 한다. 해석에 따라 나의 이민 생활은 사뭇 달라진다. 그 이유를 내가 성취하려고 했던 ‘American Dream’에서 찾으면 나의 한계와 이 땅의 상황 때문에 결국 좌절이 찾아온다. 나지막이 불러본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그렇다.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American Dream’을 너머 ‘Kingdom Dream’을 꿈꾸게 하신다. 그런 관점으로 나를 보니 좌절은 없다. 나의 한계가 환경의 어려움 때문에 움츠리지 않는다. 나를 이곳에 보내시고 나를 통해 미국에서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웅대하신 계획을 생각하니 오늘도 밤잠을 설친다.
09.0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