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는 없다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그렇다. 성경 어디에도 "사모"라는 단어는 없다. 명칭이 없으니 그 맡겨진 일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성경뿐 아니다. 세계 어느 교단의 헌법에도 목회자의 아내에 대한 명칭이나 역할을 진술해 놓지 않았다. 나름대로 내규가 있는 교회에도 "사모의 권한과 기능" 등과 같은 조항을 만들어 놓은 교회는 한 곳도 없으리라. 

그러나 있다. 한없는 책임과 끝없는 헌신을 요구하는 사모는 있다. 특히 한국교회 더더욱 한인 이민교회에는 사모의 강력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모가 되어서 그 정도도 못 참느냐"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모에게 남다른 인내심이 요구되는 것은 다반사이다.

사모는 그 자신이 안수를 받은 성직자도 아닌데 성직자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거룩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사모에겐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런데 사모에겐 크나큰 의무가 있다.

 

사모들의 이야기와 사모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계속되었던 필자가 속한 노회 가족수련회에서의 일이다. 이번 수련회에 다른 강사는 초청하지 않았다. 모든 사모님들과 목사님들이 다 강사이셨다. 척박한 이민 땅의 이민목회자를 내조해온 사모님들의 감쳐진 이야기, 묵묵히 목회의 길을 따라준 아내들에게 직접 말하지 못했던 목사님들의 이야기. 목이 메어 말을 멈출 때가 많았고 아예 대놓고 우시는 일도 있었다. 

"제가 목회자의 아내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혼하고 싶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어느 날 자장면 집 옆을 지날 때였습니다. 둘째 아이가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보채는 거여요. 그날 호주머니에는 자장면 한 그릇 값밖에 없었어요. 무작정 네 사람이 들어가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켰어요. 아이 둘이 그것을 먹고 있은 동안 아내와 나는 식탁에 놓인 노란 무만 집어 먹었습니다." "밥을 먹는 날보다 금식한 날이 더 많기도 했지요." "남편의 오른팔 같은 역할을 하던 분이 떠날 때 너무 마음이 아팠지요." "먼 나라에 선교센터 짓는데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 70만불에 대출까지 받아 100만불 헌금하자고 했을 때 아내는 흔쾌히 동의해 주었습니다." "나 다시 태어난다면 그대와 또 다시 결혼할 것입니다." "아내가 나의 가장 위대한 설교학 교수랍니다." "가족 식사만도 챙기기 힘든데 매주일 성도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아내가 너무 고맙답니다." "새벽예배를 일년 열두달 하루도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새벽예배 설교를 주일설교와 똑같이 정성스레 준비하시는 목사님이 너무 좋습니다...."

 

고 황수관 박사의 강의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무엇이냐?" 묻는 강의가 있었다. 정답이 무엇이었겠는가. 그것은 "어머니"였다. 맞다. 어머니의 희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크고 깊고 위대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누구나 알아준다.

사모는? 모든 어머니보다 더 큰 희생이 따르는 사모, 어떤 어머니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는 사모를 알아주는 자는 없다. 자녀는 물론 목사 남편도 잘 모른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목회 현장 어디에도 그는 말없이 있다. 그가 누구인지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08.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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