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최근에 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느 노(老) 목사님의 임종 예배 동영상이었다. 사모님과 자녀들이 둘러앉아 말씀을 읽고 찬양도 하며 기도도 드리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도 그 영상에 담겨 있었다. 마지막 호흡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이 성숙(成熟)한 것 같은 자녀들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치시는 목사님의 모습에서 목사님이 지금까지 달려오신 길이 선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영상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목회자는 어떤 길을 달리다가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 깊은 깨달음도 가졌다.
“My Way”라는 노래는 크게 둘이 있겠다. 하나는 2천여 년 전 사도바울이 불렀던 “My Way”이고 다른 하나는 수십 년 전 Frank Sinatra가 불렀던 “My Way”이다. 바울을 이렇게 불렀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결연하고 웅장하다.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는 이렇다. “이제 끝이 다가오는군/ 그리고 마지막 커튼도 내 앞에 있어/ 내 친구여, 확실히 말해두지/ 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말할거야/ 나는 바쁘게 살아왔지/ 모든 고속도로를 다 달리면서/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난 내 방식대로 이것을 해왔다는 거야....” 화려하고 대단하다.
생애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부른 점에서 두 “My Way”는 같았지만 그 방향과 방식은 전혀 달랐다. 바울은 부름 받은 소명자의 길이 “나의 길”이라고 말한다. 자기 생명을 다 쏟아 부으며 그 길을 달리겠노라고 노래한다. 그 길은 영원히 가치 있는 길, 죽은 자를 살리는 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길임을 분명히 알았다. 바울은 그 길을 흔들림 없이 달렸다. 그래서 생애의 마지막에 이렇게 선언할 수 있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멋진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시나트라가 부른 “마이웨이”는 바울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큰소리치며 꽤 멋진 삶을 살아온 것처럼 이것저것 말은 화려하게 하지만 실상은 아무런 목적도 가치도 없는 서글픈 “나의 길”이였다.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는 2020년에 죽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영화음악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황야의 무법자”라는 휘파람이 스산하게 울려 퍼지는 영화음악도 만들었고, 그 유명한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연주되는 “미션”이라는 영화의 주제가도 만들었다. 어떤 주제이든지 다소 몽환적(夢幻的인 그의 영화음악을 한가히 번갈아 듣고 감상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멈추어 서서 나의 길이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황야의 무법자”와 같은 길인지 부름 받은 고결한 “미션”의 길인지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그렇다. 내가 부르는 마이웨이가 바울의 마이웨이인지 시나트라의 마이웨이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보니 오늘은 한국의 제헌절이다.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황야의 무법자”가 영화에서만 있었으면 좋겠다. 부르심을 좇아 사는 “미션”의 이야기는 영화 밖으로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시나트라의 노래에 더 이상 감명 받지 말고 바울의 결단에 감동하며 그 결단을 내 삶으로 확실히 삼아야겠다.
07.1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