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장사라 사모 (텍사스 빛과소금의교회)

무엇인가에 끝없이 의지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고 그래서 거룩하고 의연하고 고상하고 지적이고 아름답고.... 온갖 멋있는 것들로 자신을 꽁꽁 포장하고 살고 싶은 것은 어쩌면 에덴으로부터 쫓겨난 인간의 본연의 열등감 때문일까? 이렇게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집착’의 끈이 되어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닐 때 그것들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나에게 땅으로부터의 집착을 하나 둘 끊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도 가슴 속에 뭉클 감격으로 꽉 차 온다. 이렇게 하나님의 강한 손길이 세상을 향한 집착의 끈에서 나를 놓아주실 때, 난 어느덧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어디론가 훨훨 자유로이 날아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훨훨 나는 한 마리의 새를 좋아한다.

외롭고 삶에 지칠 때, 푯대를 향해 달려가다 넘어질 때,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 나는 푸른 초장에서 목자 되신 주님이 한 마리의 어린양을 안고 계시는 그림 앞에 내 눈이 고정되곤 한다. 그 양은 가장 고집스럽고 제멋대로 이며 가장 약하고 무능한 양이기에 주님은 유독 그 양을 안고 계시지 않았을까? 그 한 마리의 양이 바로 ‘나’ 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어느새 충혈된 눈이 되어 그 양이 된 평안함을 맛보곤 한다. 그래서 나는 한 마리의 양을 안고 있는 예수님의 그림을 좋아한다.

어떤 모양으로 던져도 넘어질 듯 하면서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뒤로 밀어도 다시 일어서고 옆으로 밀어도 다시 일어서고, 넘어질 듯 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를 보면, 시편 37편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말씀이 생각난다. 오뚝이는 그 속에 무거운 납덩어리가 중심에 있어서 그 중심을 향해 일편단심 일어선다. 그렇다. 삶이 마구 흔들려도 오뚝이와 같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내 중심에 주님이 탁 버티고 앉아 계시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마구마구 흔들어도 안간힘을 쓰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인형을 좋아한다.

마치 솜이불같이 두툼하게 싸여 온 대지를 하얗게 물들여 놓는 ‘함박눈’은 어느 곳에나 내려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버린다. 그래서 지붕위에도, 차 위에도, 더러운 쓰레기 더미 위에도 다 덮어버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치장해준다. 주님이 우리의 흉악한 죄를 보혈의 피로 다 덮어서 눈과 같이 희게 하셨듯이... 그래서 소리 없이 수북이 쌓여 온 세상의 모든 형체의 허물을 다 덮어 버리는 함박눈을 나는 좋아한다.

여행은 익숙한 일상을 떠나 생면강산에 가는 것이므로 불편하고 고생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것도 우리보다 문화수준이 낮은 선교지라면 더욱 더... 그러나 그 고생 속에서 얻어지는 값지고 귀한 새로운 경험들은 그 고생에 족히 비할 바가 아니리.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그동안 익숙해져서 감각 없던 일상들(내 집, 교회, 가족, 일터..)이 참으로 귀하고 고맙고 좋은 것들인 것에 눈이 떠진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올 곳이 있는 여행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 같은 한 해가 거의 다 가고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 가슴이 움츠려지며 무수한 상념들이 지나간다. 한 해 동안 이루어보려 손을 꼽았던 많은 일들이 아직도 미지수로 남아 있어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잿빛 구름과 매서운 바람, 바바리코트, 시린 손, 앙상한 나무, 기쁜 성탄절, 소망의 새해, 이 모든 사랑스런 것들이 담아 있는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또 셀 수도 없이 많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아침에 헤아려 보며 가슴 속에 바람처럼 이는 진한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하얀 백지위에 계속 느낌표(!!!)를 찍어본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느낌표 있는 삶이 되어 내 속에 고갈된 사랑의 에너지가 삶의 노래와 감사가 되어 흘러나오리.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감동하셨듯이... changsamo10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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