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라 사모 (텍사스 빛과소금의교회)
살다보면 가끔 별다른 원인도 없는데 슬프고 외롭고 불안할 때가 있다. 삶에 대한 우수가 물밀 듯이 밀려와 가슴이 저려올 때가 있다. 영혼의 상처 때문이다. 그런 나를 대할 때마다 남편은 ‘당신은 너무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그래 갖고 어디 목회 하겠어?’ 하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그래서 한번은 ‘당신이 사모의 고충을 알아?’ 하며 대든 적이 있다. 그 한 마디 말대답에 스스로 얼마나 치유가 되었는지... 속사람이 다 시원함을 느꼈다.
몸이 아픈 것은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도, 잊혀질 수도 있지만 영혼의 상처는 어루만져 주어야 하고 삶의 고비마다 ‘그래, 너 잘하고 있어, 괜찮아, 주님이 함께 계셔, 널 사랑한다니까....’ 계속 자신을 달래주며 기다려주며 같이 아파해주며 가슴이 기뻐하는 일을 하며 영혼이 조금씩 커나갈 때 치유되리라.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가 알아주면 그 속에서 치유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런데 누가 밤낮 내 상처를 알아주고 싸매주고 할 수 있겠나. 조석으로 변하는 내 마음 나도 몰라 인데... 그래서 상대방의 스트레스도 풀어주고 자기 스트레스도 자기가 풀어 버리는 인격이 진짜는 큰 사람이요 깊은 사람이요 성숙한 사람이 아닐까.
아마 우리 주님께서도 사람들이 침을 뱉고 조롱하고 찌르고 때리고 하던 그 모든 것이 극심한 스트레스였을 것이리라. 그러나 주님은 스트레스로 인한 자신의 감정을 누구에게도 폭발시키신 적이 없으셨다. 도리어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여 주셨다. 그래서 정말 무의미한 일상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줄 알고, 큰 문제 앞에서도 의연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치유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길을 가다가 흙탕물에 발이 빠진 어린 아이는 그냥 넘어진 채 일어날 줄 모르고 계속 엄마를 찾으며 운다. 일어나 발을 쑥 빼면 될 텐데 계속 앉아서 우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우리는 다 큰 어른인데도 계속 환경 탓, 건강 탓, 가난 탓, 남편 탓, 자식 탓..만 하고 발을 뺄 줄 모르고 앉아 울고 있으니, 그런 삶은 십중팔구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보채고 원망하는데 삶의 소중한 에너지를 다 허비하고 살게 되리라.
정신병자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차피 한 치의 앞도 모르고 사는 인생이라면, 그 한 치의 앞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면, 그래서 내가 안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그냥 놓아버리고 나면 가슴이라도 시원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놓아버려도 여전히 내가 존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사방이 다 막혀도 내가 올려다 볼 수 있는 하늘은 그야말로 하늘만큼 뻥 뚫려 있는데, 그래서 그 하늘에 계신 주님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 하나만 붙잡고 있어도 꽉 차 있던 영혼의 상처들이 하나씩 열 길로 도망가지 않을까. 그렇다. 급해서 힘들어서 절박해서... 라며 구구 절절이 구실을 대면서 얄팍한 일상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한 우직한 몸부림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인기척을 내실 때까지 바닥에 엎드린 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여리고 성은 반드시 무너지리라. 그래서 남의 자식을 부러워하고, 돈 없는 것을 속상해하고, 외롭다는 하소연에 기운을 빼가며 내 몸만 섬기고 사는 상처투성이인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가슴이 동시에 열려 공감의 절정을 이루어 내 영혼의 상처는 어느새 잠적해 버리는 광명을 맞이하리라 그리고 그것은 분명 하늘의 하나님이 하신 일이리라. changsamo102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