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다고 하지만 내가 직접 느껴보아야 겠기에 창문을 열고 날씨를 음미해본다. 요즘 들어 텍사스에 잦은 흐린 날로 또 비 오는 날로 인해 가슴이 행복한데 이런 날이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분들이 있다. “사모님, 사모님 날이에요.” 이렇게 햇볕만 구름 속에 가려도 막 살아나는 내게 남편은 내 속이 음침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날씨만 흐려져도 갑자기 할 일도, 또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아져서 책상위에 할 일들이 수북이 쌓이는 걸 어떡하나... 이런 날은 영락없이 예수님이 그리운 날이다.
똑똑한 사람이 감사도 잘한다는 말은 곧 감사도 기억하는 사람이 잘 한다는 뜻일 게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좋은 말씀을 많이 기억하고 있어야 그 말씀으로 쓴 가슴도 쓸어내리고 힘들다고 아우성치면서도 감사가 새어 나오리. 요즘 들어 옛 노래가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도 급변하는 하루가 버거워서 맘 깊이 매장되었던 노래라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벌써 6월이다. 몸은 튼튼히, 생각은 새롭게, 느낌은 맑게, 영은 깨끗이... 걷는 모습, 말하는 태도, 밥 먹는 태도... 그런 작은 변화들과 씨름하면서 삶을 만난다. 삶은 변화이다. 그래서 그 변화를 쫓아가려 다짐해도 어쩐지 다짐만으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오히려 그 다짐을 못 지킴으로 인해 좌절과 분노가 생길 때가 더 많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변화들은 요구해서 얻는 것보다 감사해서 얻는 것이 훨씬 크고 많은 것 같다. 매일처럼 뜨는 태양에게 어떤 것을 요구해도 얻는 것이 없지만, 그 태양으로 인해 감사하면 너무나 많은 또 다른 감사들이 줄줄이 찾아오리라.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불행의 시작은 일상을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우리가 별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유달리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닌 것, 눈에 띄게 미모의 사람이 아니며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조상을 갖지 못한 것, 아니 굳이 굉장한 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런 내세울 것들이 반에 반이라도 있음... 하는 속상한 바램들이 알게 모르게 영혼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수중에 아무것 없어도 여유 있는 마음, 좀 몸이 쑤시고 아파도 웃을 수 있는 얼굴,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고 방방 뛰면서도 식지 않은 커피 한잔 앉아서 마실 수 있는 시간, 일의 성취에 관계없이 긴장을 풀고 일할 수 있는 마음, 밀고 당기고 저울질 하는 피곤한 계산이 없이 그냥 필요하면 덥석 내어줄 수 있는 관계... 이런 것들에 더 잘 길들여진 나의 삶이면 좋겠다. 덜 편하다는 것으로, 덜 가진 것으로 불평의 주제를 삼았던 일들이 어제의 일이 되고 오늘은 주어진 일상과 그저 사랑에 빠지는 행복한 겸손을 배우고 싶다.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해 지려고 결심한 정도만큼 행복하다던데... 모리라는 사람은 불치병에 걸려 사지가 마비되고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죽어 가면서도 이렇게 말했던 것이 늘 내 가슴에 남아있다. “내 처지가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을 때 필요하면 한바탕 크게 울지만 그 다음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자. 몇 분만 눈물을 흘리고 그 날의 나머지는 즐겁게 사는 거다.” 무서운 병과 씨름하면서 투병하는 사람도 그렇게 사는데...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내 모든 힘겹다는 투정이 그냥 우스워진다.
오늘같이 예수님이 그리운 날, 그래서 ‘주님’ 하고 가슴으로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발이 시려울까봐 그 발에 신겨드릴 양말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한 어린아이의 마음같이 작고 낫게 주님 앞에 서 본다. 그래서 더 섬세하고 친절하게 우리 속에 ‘나’를 밀어 넣으며 같이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나눔을 통한 치유가 걸어 다니고 숨 쉬고 웃고 울고 하는 매일의 삶 속에서 절절한 영혼의 노래로 울려 퍼져 끝까지 아름다운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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