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준비할 기간 주는 것이 바람직

이정현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 (310)749-0577 E-Mail: tlspc0316@gmail.com

Q: 목사님, 제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의사로부터 회복되기 힘든 “암 3기”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인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본인이 알면 너무 큰 충격을 받을까봐 가족들이 아직 본인에게는 말하지 않고 있는데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알려야 할지 아니면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되는지요? -전화로 K집사

A: 성경은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좋은 의도에서 행한 소위 선의의 거짓말을 윤리학적으로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남아를 출산하면 죽이도록 한 애굽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아이들을 살려준 애굽의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 관한 기사나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살려주기 위해 가나안의 군사들에게 거짓말을 하였던 기생 라합에 관한 기사는 이에 관한 대표적인 예입니다(출1:15-21, 수2:4-6). 이웃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기독교 윤리학 용어로 “봉사의 거짓말”(mendacium offciosum) 또는 “필요한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의 라틴어 뜻은 이웃의 유익을 위해 하는 거짓말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고려신학대학원의 기독교윤리학 교수인 신원하 교수는 ”교회가 대답해야 할 윤리문제“라는 책에서 고전적인 예를 듭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네델란드를 점령하여 그 곳에 있는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하여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독일군이 유대인들이 숨어있을 곳을 탐문하여 한 가정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때 집주인은 과연 진실을 말해야 할 것인가? 만약 없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유대인을 보호했다면 9계명을 어기는 것이고 악을 행한 것인가? 9계명이 강조하는 것은 이웃을 해할 의도로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독일군에게 없다고 하여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한 것은 비록 거짓말이기는 하나 9계명이 의도하는 바를 어긴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신 교수는 말했습니다.

오늘의 질문과 같은 경우에 처하면 가족들은 환자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과거에 많이 있었습니다. 진실을 말하게 될 경우 환자가 엄청난 충격을 받아 건강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해악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생존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면 환자는 망연자실하게 되고 그나마 갖고 있는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릴 수도 있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죽음을 재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반대로 예상되는 정신적 영향을 우려하여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것 역시 환자에게 상당한 해악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이 거짓말은 환자에게 자신이 처한 정확한 현실과 상태를 파악하고 직시하게 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를 박탈합니다. 그래서 환자가 의미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 생을 정리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환자는 자신과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환자 자신이 이때까지 추구해온 일들에게 대해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는 순간을 확보해야 하는 권리가 있고 그렇게 하기를 원할 수 있는데 진실을 알지 못하므로 정작 본인은 아무런 준비없이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케이스는 반드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환자에게 진실을 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잠간의 도움이나 생명을 조금 연장하는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데 그친다면 비록 생명을 조금 단축시키는 “작은 해”(Minimal harm)를 감수한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주어 본인이 현상을 정확히 알고 주 앞에서 인생의 마지막 기간을 잘 정리해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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