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 죽인 박춘권이 영수 돼

이정현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 (310)749-0577 E-Mail: tlspc0316@gmail.com

Q: 한국이 과거 쇄국정책을 펼 때 외국 선교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텐데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는 누구인지요? 그리고 핍박을 받지는 않았는지요? 그리고 최초의 개신교 신자는 누구인지요? 알고 싶습니다. -나성에서 권 집사

A: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영국의 로버트 토마스(Robert J. Tomas,1839-1866)라는 선교사입니다. 총신의 박용규 교수가 쓴 “평양 대부흥 이야기”란 책을 보면 토마스 선교사는 1863년 12월에 영국 런던대학을 졸업한 후에 동양의 선교에 불타서 20대 초반의 나이에 중국에 선교사로 도착합니다. 그는 갓 결혼한 아내 케롤라인 갓프리와 함께 중국에서 사역을 시작하는데 임신 중인 아내는 이국생활에서 오는 충격에다가 중국의 기후가 잘 맞지 않아 심한 고생을 하다가 유산을 하고 결국 그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충격, 절망을 달랩니다. 그는 조선 땅에 선교사로 들어가기 위해 중국어 성경책을 가지고 해도 창린도에 와서 2개월 반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기에 충분한 한글을 익힙니다. 그런 후에 그는 1866년 제너럴 서먼호(General Sherman)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입국한다는 말을 듣고 통역관 자격으로 승선합니다. 그는 1866년 8월1일 상당한 분량의 성경책을 가지고 떠납니다. 그 당시 대원군 치하의 한국은 쇄국정책을 쓰고 외국과 접촉을 끊고 있었기에 박규수라는 평양감사는 그 배를 불 지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배가 불타자 사람들이 뭍으로 나오자 군관들이 한사람 한사람 다 칼로 죽입니다. 마지막으로 뭍으로 나온 사람이 토마스 선교사였는데 그는 한 손에 성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칼을 빼어들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박춘권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가지고 온 성경책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고 잠시 머리를 숙이고 최후의 기도를 드리고는 다시 성경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병졸은 성경받기를 거부하고 이내 그를 칼로 내리치며 처형했습니다. 26살의 꽃다운 나이에 토마스 선교사는 피를 흘리며 첫 한국 개신교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아내를 잃은지 2년 반 만에 아내의 뒤를 이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러나 터툴리안이 말한 것처럼 순교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순교로 인한 교회의 씨는 토마스가 순교하던 바로 그날부터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박춘권 병졸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니 그 책이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죽어가면서도 내게 그렇게 건네주려 했을까?” 생각해 동료 몰래 그는 대동강 그 현장에 가서 흩어진 성경책을 주워 가지고 집에 돌아옵니다. 박춘권은 그날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결국 그는 예수를 믿고 훗날 교회의 영수 즉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조카 이영태에게 그 성경을 읽게 해서 예수를 믿게 했고 그는 평양 숭실대학에 진학하여 졸업한 후 레이놀즈의 조사가 되어 우리가 갖고 있던 한글성경 2/3를 번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국 26살의 영국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피가 한 알의 밀이 되어 한국 교회에 최초의 신자를 만들어 내었고 한국교회의 태동과 성장에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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